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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둔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아침이 부쩍 한가로운 것은 아니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 거의 반사적으로 커피를 내리고 사과나 과일, 토스트를 먹으며 눈과 귀로는 뉴스 채널을 본다. 운동하러 근처 헬스장에 갔다가 돌아오면 하루의 반이 지난다. 헬스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먹을 잡곡밥을 안치고 책을 읽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 But Beautiful)이라는 제프 다이어의 책이다. 책이 아니라 재즈 악보 같은 소설이다. 읽다 보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재즈가 들린다. 책을 반 정도 읽어갈 때쯤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른다.
혼자 먹는다고 인스턴트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는 대강 먹어도 점심 식사는 그렇게 넘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진수성찬을 차려 먹으려는 것은 아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한 끼였으면 한다. 흰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더 좋아한다. 한두 가지 잡곡만 섞은 게 아니라 22가지 잡곡을 섞어 밥을 한다. 잡곡밥은 미국에서 살 때부터 해 먹었다. 22가지 잡곡이 섞인 쌀을 본 친구들은 '새 모이 같아' 하며 나를 놀렸었다. 잡곡은 씻어서 물에 담그는 시간이 일반 쌀보다는 길어야 한다. 그리고 물도 흰쌀밥을 지을 때 보다 더 많이 채워야 한다. 밥이 되는 동안 샐러드를 만든다. 매번 채소를 챙겨 먹기 어려울 때 샐러드는 간편하지만 훌륭한 반찬이 된다. 싱싱한 채소를 씻어 썰어서 그릇에 담고 원하는 드레싱을 뿌린다. 오늘은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리기로 한다. 계란말이를 하고 밑반찬을 꺼냈다. 구운 김까지 그릇에 담아 식탁에 차린다. 화려하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반찬에 잡곡밥, 그리고 미소 된장국이 작은 식탁을 가득 채운다.
'아, 예쁘다.'
밥을 먹기 전, 소소하게 차려놓은 식탁 앞에 앉아서 잠시 행복에 젖는다. 계란말이도 잘 되었고 밑반찬으로 꺼낸 어묵도 맛있다. 무슨 반찬을 먹을까 고민할 때는 부자가 된 기분이다. 행복이란 이렇게 소소한 법이다.
점심 식사가 끝난 후, 커피 한 잔의 행복한 시간을 이어가기로 한다. 설거지하는 동안 커피 내리는 향이 가득하다. 코스타리카 커피를 다 먹어가는데, 다음에는 어떤 커피를 사야 할까 생각한다. 이 즐거운 고민을 내일까지 하기로 한다. 내일 점심은 요즘 인기 있다는 '소 떡'을 해 먹어 볼까? 소 떡에는 역시 칠리소스지, 라며 소스에 찍어먹는 소 떡의 맛을 상상해본다. 2018년 늦봄의 어느 날, 소소하지만 행복한 하루가 이렇게 또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