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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자주 끊어지는 대화, 생각 많아진 눈빛, 한동안 먼 곳을 바라보는 얼굴만으로도.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아니." 하고 서늘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럴 때면 더 많이 물어보지 못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저 바라만 보다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눈으로 웃을 뿐이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예전보다 많이 핼쑥해졌다.
사이가 깊어졌다는 것은 한동안의 침묵이 무겁지 않을때 깨닫는다. 뭔가를 끊임없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겹쳐진 부분이 많아진 것이다. 한쪽이 "그게 뭐더라?" 하면 다른 쪽이 다음 말을 이어 줄 때에도 마찬가지다. 서로에 대해 많이 익숙해졌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었다.
주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은 달라졌다. 누군가가 내 뒤에서 지켜주고 있는 기분, 아플 때, 힘들 때 , 슬플 때 갑자기 전화해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힘이 된다. 아무 말 없이 들어주기만 하는 것도, 그저 몇 마디 메시지 남겨주는 것도 커다란 위안이다. 그렇지, 나는 혼자가 아니지 생각이 들면 다시 살아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곁에 머물러 함께 살아주거나, 끊임없이 사랑을 부어주는 누군가라기 보다는 내가 필요할 때 그곳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 힘들어 라고 말했을 때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사람, 조용히 눈물 닦아주는 사람, 손을 잡아주는 사람, 몸조심해 한 마디 해주는 사람이면 족하다.
먼저 나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하기 전에는 먼저 묻지 않기로 했다. 이유를 묻는 대신 마주 앉아 맛난 것을 먹거나 하하 웃으며 불쑥 꺼내는 재미없는 농담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다 나에게 와르륵 당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당신이 나에게 해주었듯 말없이 안아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미소와 작은 위안만으로도 당신은 나에게 가득하고도 넘치는 사람이므로. 당신의 마음에도 내가 중요하고 가득하다는 걸 느끼고 있을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