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가방에 커피 담은 텀블러와 책 두어 권, 작은 노트와 볼펜을 챙겨 담고 공원 벤치 한 곳에 자리 잡았다. 공원은 나뭇가지에 바람 스치는 소리와 그 사이를 비집고 들리는 새소리에 잠겨 있다. 듣던 음악을 끄고 자연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가슴속까지 시원 해지는 느낌이 든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내 앞을 스쳐갔다. 자전거 두 대가 바람을 가르며 휘익 지나간다.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 답지 않게 공원에는 어린애들이 많다. 웃음소리가 도넛 모양으로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자전거를 잘 못 타는 나는 자전거 타고 달려보는 게 소원이다. 덕분에 자전거 잘 타는 사람들이 부럽고 멋있어 보인다. 솔직히 직진은 할 수 있지만 커브를 돌기만 하면 넘어진다. 속도를 줄이고 멈추기 전에 넘어진다. 넘어지다 그만 포기한 게 자전거 타기였다. 아직 어린아이가 그 자전거를 보조 바퀴도 없이 씽씽 달려가니 나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갔다. 여자아이의 긴 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같이 가!"
앞서가는 동생을 오기스럽게 쫓아가는 누나의 두 발이 바쁘다. 그런 누나를 모르는 척 남동생은 속도를 더 높였다. 누나는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페달을 밟는다. 작은 두 아이 사이에도 미묘한 긴장과 경쟁 구도가 놓여있다. 순식간에 내 앞을 스쳐간 남자아이가 한동안 공기를 가로질러 자전거 타는 솜씨를 뽐냈다. 비록 보조바퀴를 달았지만, 그 솜씨를 보아하니 분명 어른이 되면 스피드광이 될 게 뻔하다. 여자아이는 자전거를 세워놓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 들어간다. 누나가 세워둔 자전거 옆에 자전거를 세우려는 듯 속도를 줄이지만 남자아이는 아직 브레이크 잡는 게 서툰지 발을 땅에 질질 끌며 자전거를 멈춘다. 소년이 자전거에서 내리기도 전에 누나가 편의점에서 나온다. 손에는 과일맛 아이스크림이 두 개 들려 있었다.
"야, 뭐 먹을래?"
결코 친절하지 않은 질문인데 이상하게도 친근함이 느껴졌다. 츤데레 타입의 누나인 걸까?
"그거."
동생이 가리키는 쪽 아이스크림 껍질을 쭉 찢어 벗겨 아이스크림만 건네주는 누나는 여전히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소년이 활짝 미소를 짓는다.
두 아이는 나무 그늘 아래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다. 두 아이는 데면 데면 남처럼 서서 그늘을 즐긴다. 그 나무를 향해 다른 아이들이 뭐라 소리 지르며 뛰어간다.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한 명이 웃으니 다른 아이들도 다 같이 따라서 웃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도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공원에 웃음소리가 빠르게 전염된다. 하늘에 걸린 구름도, 공원을 비추는 햇살도,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도 모두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