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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목적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더위에 지쳐버린 탓에 근처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세일 사인이 크게 붙어 있는 여성복 코너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올해에는 오프숄더와 여성스러운 원피스가 대세인 모양이다. 키가 작은 편인 나에게 롱스커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니스커트를 입을 만큼 어리지도 않아서 구경만 하고 있다. 프릴이 아주 많이 달린 원피스는 허리가 조금 끼일 것 같고 소매 없는 블라우스는 어딘지 어색할 것 같아 망설인다.
'3킬로만 빼면 딱 맞을 것 같은데...'
눈에 딱 들어오는 예쁜 블라우스 앞에서 자꾸 발걸음이 머물렀다. 그렇게 충동구매했던 옷들이 과거에도 꽤나 있었고, 결국 그 계절이 다 지날 때까지 그 옷을 입지 못했다. 몇 번의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은 '지금 입을 수 있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옷을 사자.'였다. 버나드 쇼는 언젠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가지고 있는 것을 좋아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고 했었다.
문득 옷을 고르는 일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입을 수 있는 옷이 딱 한 벌뿐인 것처럼 동시에 두 명을 사랑할 수 없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저 옷을 구경하는 것과 직접 돈을 내고 사는 것은 다른 일인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일과 실제로 사귀거나 사랑하게 되는 일은 조금 다른 일이라고 생각된다.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일방통행이어도 괜찮지만, 사귀게 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상호 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잘 맞고 어울리는 사람,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주 편하고 예쁜 옷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데다가 편하기까지 한 옷을 입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짓게 된다. 그 옷이 꼭 비싼 명품이거나 유명 상표를 붙이고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옷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갑자기 훅 들어오는 나만의 '특별한 사람'도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면 된다. 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취미를 바꾸지 않더라도, 애써 다이어트를 하지 않더라도, 굳이 식성을 바꾸지 않더라도, 지랄 맞은 내 성격을 고치지 않더라도, 지금의 나를 그저 편하게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예쁘고 마음에 드는 옷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다시 꺼내어 입고 싶어 지는 것처럼, 언제 만나도 불편하지 않고 편한 사람과는 계절이 바뀔때 마다 더 깊은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바뀌는 계절, 그와의 첫 데이트 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