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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한동안 아팠었다. 몸이 아픈 것인지 마음이 아픈 것인지 몸살을 앓듯 내 안이 점점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겨우 나아졌지만 마음은 회복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텅 비어있던 영혼에 뭔가를 채워보려 나름 분주한 시간을 보냈었다.
어리석은 걸 알면서도 자잘한 것들에 미련을 남기고 서성이던 시간이 참 길었다. 예전의 나라면 두어 달 앓고 나서 툭툭 털어버렸을텐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매일 아침 나를 다시 추슬러야 했고, 정오쯤엔 또 포기하고 싶어졌으며, 저녁이 되면 이유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몇 달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다행스러운 것은 봄이 지나고 나서야 사막처럼 메말랐던 마음에 마치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내 마음이 조금씩 촉촉해짐을 느낀 것이었다. 다시 써야겠다 하면서도 펜과 노트 앞에서 몇 줄만 적고 나면 쓰러질 것처럼 힘들었던 것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힘든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간 되는 대로 영화와 책을 보았고, 연극과 전시를 보러 갔다.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내 마음속 텅 빈 공간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지만, 특히 곁에서 말없이 기다려주고 돌봐준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친구의 팔에 매달려 이겨냈다.
그런 나를 응원해주고 다독여 준 친구가 없었더라면 난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아프냐거나 밥 먹었냐는 평범하게 스쳐 지나가는 말들이 사실은 참 친절하고 다정한 언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계획성과 실천력이 좋은 친구는 항상 나보다 몇 미터는 더 앞서갔지만, 따라가는 내가 힘들까봐 멈춰서 기다려 주고, 때로는 칭찬이나 충고를 더해주기도 한다. 나와 같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전진하고 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서 함께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가슴 두근거릴 만큼 행복한 일이다.
"힘들면 천천히 걸어가도 돼. 때로는 쉬었다 가도 돼. 하지만, 자신에게는 목적지가 있고, 언젠가는 꼭 그 목적지에 다다를 거라는 희망만은 잃지 마."
친구의 말대로 다시 글을 써보기로 한다. 지금껏 친구의 말은 틀린 말 하나 없었으니 이번에도 친구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뜨겁던 여름이 조금씩 식어가는 이 밤에 이번 가을과 겨울은 작년과 다르게 풍성한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