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풍경 소리

그런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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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인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한낮부터 생맥주 한 잔을 어떻게든 꼭 마셔야 한다는 친구와 마주 앉아서 최근 읽은 책에 대해 두서없이 떠들어 대는 순간들을.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친구가 맥주를 마시는 동안 물이나 차를 마신다. 이미 점심을 먹었기에 굳이 안주는 없어도 된다. 역시 한 여름철에는 안주없이 시원한 생맥주와 차가운 얼음물만 있어도 용서가 된다. 꼭 술이 아니라도 좋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1920년대 연인들처럼 느긋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것도 좋다. 술 잘 못하는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그런 거다. 창 밖 풍경에 대해 한 마디씩 던지면서 우리가 태어난 어떤 곳을 추억하는 일도 좋다. 우리가 아직 서로를 알지 못했을 때 살았던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것도 좋다. 우리가 아직 낯선 사이였을 때 어떻게 친해졌는지 그 추억들을 하나씩 나열해도 좋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우리가 읽은 책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듯이, 어떤 날은 괜시리 우울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이야기를 심각하게 들어주던 친구는 그런 분위기가 싫었는지 순간순간 재치있는 한 마디로 나를 폭소하게 만든다. 매사 진지한 성격의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그런다. 아무리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여도 마무리는 항상 웃음으로 끝난다. 요즘 관심이 생긴 취미에 대해, 최근에 본 영화나 책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그러한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런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존재한다는 것이 좋다.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함께 있지 않아도 생각만 하면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들을. 그 친구의 모습만 떠올려도 하루가 기분이 좋고, 다음에는 만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순간이 좋다. 미래에 대한 걱정없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좋다. 미리 약속하지 않고 갑자기 불러내더라도 당장 나와주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 여기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서 좋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해서 좋다. 힘들었다고 툴툴대기만 하는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그런 거다. 한 마디 농담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웃게 만들어주고,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을텐데 '밥 먹었어?'라고 항상 카톡을 보내주는 친구의 관심이 좋다. 그런 사람이 내 친구여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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