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풍경 소리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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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인

숲 속에서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그 근처 숲을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숲에 접어들면 나보다 큰 나무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들은 신화처럼 아련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나무 사이에는 요정과 정령이 어른거리고, 그늘 사이에 숨은 작은 꽃들은 씨를 맺을 때까지 향기 뒤에 숨는다. 버석이는 흙소리가 발걸음 사이를 채운다. 공기는 달콤하고 땅은 부드럽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고향에 온 것처럼 아늑하다.

숲 속에서 걷다 보면 방향 감각을 잃을 때가 있다. 아무리 자주 다니던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나뭇잎이 떨어져 가지만 엉성하게 남아있거나 웃자란 풀잎이 덮어버린 길은 기억과 달라져 버릴 때가 있다. 알고 있다고 자만했다가는 더 잃어버리기 쉬울지도 모른다. 자주 다니던 길일 수록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더 당황하게 된다. 그럴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방향을 추측할 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햇빛의 방향,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뱡향, 풀이 누운 방향, 계곡물이 흐르는 방향... 그러면 숲의 요정이 나타나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도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목표를 향해 걷다가 방향 감각을 잃게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길을 잃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어떤 것이었나 되돌아보게 되고, 그동안 왔던 길을 되짚어 본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때처럼 당혹감이 내 앞을 덮쳐 오겠지만, 침착하게 목표를 향한 올바른 길을 찾아낼 때까지 주위 상황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인생에서 길을 잃은 것과 숲에서 길을 잃은 것에는 다른 점이 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때는 방향과 지형적 정보에 의지해서 어떻게든 길을 찾아가야 하지만, 인생이라는 숲 속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길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막상 그 길을 향해 떠나보니 그 길이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동안 지나온 길이 내 삶의 길이었기 때문에 굳이 먼 곳으로 떠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주변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 열정이 부르는 쪽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열정과 욕망이 달리는 쪽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면 된다. 인생이라는 복잡하고도 난도가 높은 미로의 숲에서 빠져나와 찾아낸 곳이 어디든 간에 그곳이 종착지가 된다. 그곳이 내 평생의 종착지가 될지, 아니면 잠시 머물다가는 장소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생은 그만큼 즐겁기도 하고 살아볼 가치가 있다. 인생이라는 숲 속을 가끔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고, 모든 것을 느끼며, 때로는 미친 듯이 웃거나 울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결국 인생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그렇게 물 흘러가듯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구나, 하고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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