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풍경 소리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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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인

돈을 벌며 치열하게 살았던 곳을 떠나 어릴 때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다시 돌아오는 봄에. 그리고 다시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꼭 1년이 지난 셈이다.

1년 전에 나를 계속 괴롭히던 '몸 안의 그것'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지난 1년 간 절망과 외로움의 깊은 심연에서 나를 건져준 것은 사람의 따스한 손길이었다.

"괜찮아?"

매일 듣는 목소리여도 항상 그의 전화는 반갑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얼어가던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번져가는 느낌이 든다.

"응"

"밥은 먹었어? 뭐 먹었어?"

"그냥 집에서 내가 만든 음식으로 먹었지."

그저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평범한 대화지만, 내게는 그토록 그리웠고,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세상에 딱 두 방향만이 존재한다면, 그 방향이 나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로 나눠질 것 같다. 이제 내 삶의 방향은 더 이상 죽음을 향해가지 않고, 특별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행복한 생명을 향한다. 지난 겨울처럼 유난히 혹독했고 지옥같았던 계절이 또 다시 찾아왔지만, 이번 겨울은 지난 겨울과는 다르다. 날씨는 추워졌지만, 내 마음속의 계절은 여전히 봄 또는 가을이다.

우리의 목적지가 사랑의 끝 혹은 이별을 향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생겨나는 추억 조각들을 쌓아가는 과정임을. 살아간다는 건 죽음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함께 했던 순간들을 서로의 마음속에 남기는 발자취라는 것을.

그 끝이 비록 이별이거나 혹은 죽음이더라도 내가 살아있었고, 사랑했고, 눈물을 흘렸음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끝을 향해 걷는다고 생각했던 발걸음을 다시 반대로 돌려 걷기 시작하면 그 곳에는 아직 만나지 않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내가, 소중한 그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을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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