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풍경 소리

다른 행성에서 온 괴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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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인

카페 문을 열자 안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공기가 바람이 되어 볼을 스쳐왔다. 달콤한 커피향과 빵 굽는 냄새도 섞여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카페에 들러 커피 마시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쩌다 보니 집 근처에 있는 그 카페에 거의 매일 가게 된 것이다. '커피가 맛있어서'라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꽤 넓은 공간에 평일 한 낮에도 손님으로 붐비는 곳임에도 항상 아늑한 느낌이 든다는 것도 다른 이유다. 대체로 오전 11시쯤에 카페에 들러 가져간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커피를 마시고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카페에서 일하는 예쁜 아르바이트생과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해져서 그녀는 내가 나타나면 그날 특별히 구운 쿠키를 챙겨주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가 카페 한구석, 창가 자리인 것을 알고 나서 푹신하고 큰 쿠션도 가져다 두고 드림캐쳐도 창가에 달아주었다.



평일 한낮인데도 카페에는 꽤 많은 손님들로 붐빈다. 다들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여다 보며 뭔가를 쓰고 있다. 그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마치 안개가 되어 버린듯 카페 공기에 녹아 들어버린 기분이 된다.



모든 것은 항상 비슷하고 익숙했다.



그 익숙함이 깨진 것은 일주일쯤 전이었다.



마주 보면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같은 자리에 그 사람이 앉아 있는것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나처럼 한 여름 뜨거운 날부터 거의 매일 이 카페를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저 사람 또 왔네.'




그를 발견한 것은 두 시간째 책을 읽다 잠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시야에 그가 들어왔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도 읽던 책에서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두꺼운 안경 뒤에 숨겨진 눈빛이 꽤 날카롭다고 생각했다. 아주 짧은 순간 눈이 마주치고 나는 시선을 떨어뜨려 읽던 책의 다음 문장을 이어 읽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천연덕 스러운 표정으로.



"저 자리에 항상 앉으시는 분이요. 후드티 입고 안경 쓰신 저 분도 작가래요."



새로 구웠다며 초콜릿 쿠키 접시를 들고 온 아르바이트생이 나에게 속삭였다.



"그래요?"



"네. 그러고 보니 저 분도 작가님도 공통점이 꽤 많은 것 같아요."



"공통점이라면 어떤?"



낡은 후드티를 입고 앉아 장자끄 루소의 책을 읽고 있는 낯선 남자와 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건지 궁금했다.



"두 분 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드시더라고요. 책도 두 세 권 가져와서 테이블에 쌓아두고요. 다 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도."



"내가 그랬어요?"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작은 노트에 뭔가 막 쓰는 것도 그렇고. 책 읽는 동안에는 여러번 불러도 듣지 못하시는 것도 그렇고요."



그녀는 비밀이라도 폭로하는 듯 흥분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요. 두 분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작가들이란 다른 행성에서 온 괴짜들인가 보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이 청량해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웃음 소리는 공기를 흔들어 창가에 걸린 드림 캐쳐를 가볍게 흔들고 지나간다. 그 웃음은 커피잔에 담긴 검고 맑은 커피에도 담긴다.



"그 노트에는 뭘 그렇게 많이 쓰세요? 그게 항상 궁금해요."



"아무거나요. 막 생각나는대로."



그녀의 질문에 수줍어진 내가 대답한다. 볼이 그만 붉어졌다.



카페 문을 열고 거리에 나서자 얼음조각을 품은 듯 차가운 공기가 내 얼굴을 마구 쓸고 지나간다. 다른 행성에서 온 괴짜같다는 그녀의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나'라는 인물에 대해서 흔히 들어왔던 차분해 보인다라거나 조용한 사람 같다는 말보다 훨씬 매력적인 말처럼 느껴졌다. 맛있는 커피만큼이나 표현력이 좋고 유쾌한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그 카페에 내일도 또 들러야겠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다른 행성에서 온 괴짜'처럼 책을 읽고 뭔가를 끄적이며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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