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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Dec 18. 2019

진짜인줄 아는 가짜에게 권력이 있으면 생기는 일들

영화 라스트캐슬

남자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노련한 행동에 스며있는  카리스마, 온유한 성격과 날카로운 판단력,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가진  ‘어윈(로버트 레드포드)’은 삼성장군이지만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부하 8명을 잃고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지금은  최악의 군 형무소 트루먼 교도소의 한 침대위에 누워있다.   트루먼 교도소를 지배하는 자는 교도소장 윈터 (제임스 갠돌피니). 그는 실전 경험이 전혀 없다는 콤플렉스를 전쟁 유품 수집으로 극복하며 저열한 방식으로 죄수들을 지배하는 포악한 인간이다. 죄수를 사고로 위장해 죽이거나 구타, 지나친 폭행, 격리 등을 사용해 힘을 과시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든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 년쯤 전이었다. 몰입해서 보고 나서 이후, 가끔 영화 장면이 기억났다. 인연이 있었는지 한 번 더 우연히 봤고 오늘 보면 세 번째다. 보는 내내 생각이 많았다. 그저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현실과 다르지 않은 데가 많아서였다.   어윈이 군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날, 교도소장은 어윈을 자신의 방에 불러들친절한 태도로 어윈이 쓴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까지 한다. 교도소장이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가지러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 어윈은 일어나 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의 발길은 각종 전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 멈추고 곁에 서 있던 소장의 부관과 대화를 나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이런 건 그저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일 뿐 기념품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사건은 그 시점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한 그는 상처받은 만큼 어윈을 괴롭히려 든다.   어쩌면 별것 아니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사소한 말에 소장이  분노한것이다. 왜였을까? 자신이 위대하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그는 너무도 속이 좁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영웅이 되고자 하지만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무한한 성공욕으로 가득 차 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지위나 성공을 이용하여 약한 자들을 착취하고 다른 이들의 감정에 공감이 결여된 이들. 스스로 남들과 다르다거나 아주 특별하다고 느끼지만 뒤집어 보면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들. 자신의 열등함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평가절하한다.

교도소장 윈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비굴하고 아첨하며 강한 자들을 자신 맘대로 조종하려 들고, 약한 자들은 잔인하게 짓뭉개고 착취하려는 자.  그에 비해 어윈은 ‘진짜 영웅’이었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고문과 고통을 몇 번이나 겪어낸 강한 군인이며, 부하들에게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상관, 아니 진짜 위대한 대장님.



그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열등감 덩어리인 윈터는 어윈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시기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자기 맘대로 안되는 사람이어서다.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부드럽지만 냉정하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어윈.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전쟁을 몸소 체험하고 군 형무소에 스스로 들어온 어윈은 젊지 않지만 위대하고 약삭빠르지 않지만 강하다. 기회를 엿보거나 야비하지 않아도 그 걸음은 정정당당하다. 갈등의 축을 이루는 두 사람이 고난과 마주쳤을 때 대응하는 태도는 극단적으로 달랐다. 소장은 스스로의 능력만 자랑하며 편한 쪽으로 합리화 시키는 반면 어윈은 과정이 힘들더라도 옳다고 믿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사소한 다름이 시작은 약간의 차이였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결정이 이어지더니 결론에서는 완벽하게 격이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갈등이 주 스토리다. 가짜 영웅이 진짜 영웅을 만나서 치졸하게 괴롭히는, 진짜 영웅이 그 고난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볼 수 있는.  근육으로 치장하고 비현실적 능력으로 영웅이 되는 소위 ‘영웅 영화’에 식상한 분들에게는 한 번쯤 보시기를 권하고 싶은 영화다.


세상에는 자신이 진짜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가짜가 얼마나 많은가 깨닫게 하는, 나 또한 영웅은 되지 못하더라도  가짜는 되고 싶지 않아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이 영화의 이름은 ‘라스트 캐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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