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의 여행에 앞서 내가 떠나면 비어있을 집을 한 바퀴 둘러본다. 전기 스위치를 내리고 가스 밸브를 잠그고 베란다 창문을 다시 잠갔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집에는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부엌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와 간식거리, 방에는 음악 듣기 좋게 배치된 스피커와 티브이가, 냉장고에는 떡볶이를 만들 재료들이. 매일의 익숙함과 안온함을 떠나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순간, 현관문이 닫히고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 왜 떠나려 하니?'
이 질문은 순서가 잘 못 되어도 한참은 잘못된 것이었다. 왜 떠나려 하냐는 것은 보통 떠나기 전에 물었어야 했다. 적어도 캐리어를 들고 공항으로 가는 도중 물어볼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애써 질문의 답을 생각해 본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수속을 끝내고 우리는 간단히 늦은 아침을 먹었다. 비행기에서 커피를 한잔마시고 가져간 책 한 권을 다 읽고 잠시 눈을 붙이니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비행기가 역풍으로 늦게 도착했음을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기장님의 안내 방송이 이상하게도 귓가에 내내 남아있었다. 전에는 비행기란 앞으로 날아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공기의 저항을 뚫고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리학적으로는 그렇다. 날아가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힘이 존재하고 그 움직임을 막는 역풍이 몰아친다면 역풍을 뚫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날아가는 방향으로 뻗어가려는 힘에 더불어 역풍이 주는 저항보다 더 센 힘으로 달려가야 한다. 만약 그만큼 힘을 쓰지 못한다면 비행기는 제자리에서 멈춰 버리거나 뒤로 밀려가게 될 것이다. 요즘 들어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기분이 들었다. 초조하고 짜증스럽기도 했고 이것저것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비행기를 탄 것처럼 앞이 막혀있는 기분이었다. 기장님의 안내 방송을 듣고 나서야 나 자신에게 물었던 이 여행을 떠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여행을 떠나며 내 삶이라는, 역풍에서 막혀 제자리에 멈춘 비행기에서 내렸으니 역풍을 뚫고 앞으로 나갈 추진력을 찾아봐야겠다. 그 추진력을 찾아내는 것이 이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짐작했다.
"마카오에 왜 가냐고? 마카오에 사진 찍으러가지."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L은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며 대답했다. 요즘 회사 생활에 무척이나 지쳐했던 그의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 만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마카오 공항에서 내린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L과 나는 공항 출구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사람 다 중국어를 전혀 못한다. 마카오 공항 여기저기에 붉은 바탕에 희거나 검은, 혹은 황금색 한자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붉은 것은 종이요 흰 것은 글씨인데 무슨 의미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한국 분들도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 주위에는 중국어를 하는 분들만 가득하다. 여행 책자에서 읽은 것에 의하면 마카오는 호텔 셔틀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어서 굳이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도 셔틀버스를 탈 수 있고 요금은 공짜라고 한다. 우리는 공항 앞으로 나와 호텔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아갔다. 시외버스 터미널이라고 할만큼 정류장은 북적였다.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묵을 호텔 셔틀버스를 찾아본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기다리는 호텔 셔틀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낯선 섬 한가운데 뚝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여행이 잘 될 수 있을까 불안해진다. 급한 대로 공항 직원 아주머니 한분께 우리가 가는 호텔 셔틀버스 타는 곳을 영어로 물었다. 그분은 중국어와 몸짓을 반 반 섞어가며 대답하다 답답했는지 종이에 'MT4'라고 적어주셨다. 'MT4'? 기하학적 수식처럼 낯선 배열이다. 어느 장소를 말하는 것인지 장소가 아닌 다른것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 비행기 승무원으로 보이는 여성분을 붙잡고 물었다. 그분은 영어로 마카오 국제공항은 타이파 섬 동쪽 끝에 있는데 우리가 묵을 호텔은 마카오에 있다는 것, 공항에서 마카오로 가는 호텔 셔틀버스는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택시 요금 엄청 많이 나오면 어쩌지?"
어지간한 L 도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걱정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마카오에 오기 얼마전에 아는분을 뵈었을때 지난번 동남아여행을 갔을때 택시 기사님이 미터기도 안켜고 가더니 바가지 요금을 씌우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길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나도 똑같은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택시 탈 일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별수 없이 택시를 타고 보니 덩치 큰 기사님이 운전하고 계신다. 호텔 이름을 말했는데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아 L이 핸드폰 화면에 지도를 열고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기사님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택시를 출발 시키기 전에 미터기를 켰다. 왼손으로 툭툭 미터기를 치며 '미터! 미터!' 소리를 치신다. 아마도 미터기를 켰으니 바가지요금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불안해 하며 미터기를 보던 우리는 영어와 몸짓으로 감사하다고 했는데 기사님은 무뚝뚝한 얼굴로 운전만 하신다. 말을 걸었다가는 화낼 것 같은 표정으로 도로를 질주하시더니 약속된 호텔 앞에 우리를 내려주신다. 남동쪽 끝에서 마카오 반도의 세나두 광장 근처까지 택시로 103 홍콩 달러(15,000 원 정도)가 나왔다. 겨우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내내 들고 다니던 셀카봉을 택시에 놓고 내린 것도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래도 핸드폰은 갖고 내려서 얼마나 다행인가, 길을 잃지 않고 숙소를 찾아왔으니 잘 되었다. 겨우 한숨 돌렸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입고 있던 겨울옷을 걸어둔 후 긴 팔 셔츠에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한국에서는 초가을 날씨라는데 느낌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덥다. 습도가 75%, 기온은 섭씨 19에서 21도를 오간다. 마카오에는 비 오는 날이 많다고 해서 우산도 가져왔는데 다행히 날씨가 맑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고 주위가 온통 공사 중이라 공기가 깨끗하지는 않았다. 셀카봉을 잃어버린 탓에 핸드폰만 들고 길을 나섰다.
마카오의 거리는 아주 매력적으로 이중적이다. 새로 지은 건물 사이로 아주 오래된 건물이 마구 뒤섞여 몽환적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아파트 베란다마다 빨래가 걸려있고 상인들은 중국어로 손님들을 부른다. 좁은 골목마다 관광객으로,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오래된 건물로 이어진 골목은 구불구불 도시의 혈관처럼 계속된다. 우리는 큰길에서 빠져나와 좁은 골목 사이로 접어들었다.
"우리 뭘 좀 먹어야 하지 않을까?"
L의 말을 듣고서야 배가 고파왔다. 인천 공항에서 9시쯤 늦은 아침을 먹었고 지금은 오후 5시. 점심보다는 저녁에 가까운 식사가 될 것이었다. 두리번거리던 우리는 깔끔 해 보이는 식당을 찾아냈다.
식당에는 손님이 세분 뿐, 한가하다. 종업원은 우리가 들어서니 중국어로 말을 건넸다가 못 알아듣는 것 같은지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영어로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어디선가 한국어로 된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메뉴판에는 음식이름과 사진이 함께 나와있고 한국어로 간단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친구는 맥주부터 시켰다. 컵이 아니라 500ml 큰 병으로 나오는 '칭다오'맥주가 인상적이었다. 친구 말로는 이곳에서는 '칭다오 맥주' 가격이 무척 싸다고 한다. 나도 친구를 흉내 내 맥주를 한 컵 가득 따랐다. 시원한 맥주 한잔에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던 긴장과 더위가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좋아하는 시인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 ‘잘 차려진 주안상이 귀한 게 아니라, 다만 오래도록 취해서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라고 했다. 이백이 마신 독한 술은 아니겠지만 여름처럼 더운 12월 23일 저녁에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 사이에 앉아 칭다오 맥주를 들이켜는 기분은 술 좋아하는 시인 이백이 한잔 술을 마시고 흥에 겨워 읊었던 시구를 기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