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여행

마카오 타워와 호텔들

by 영인

마카오는 포르투갈이 처음 점령했을 때 섬이었다고 한다. 중국 본토와는 해협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수백 년간 퇴적된 땅이 중국 본토와 이어져 지금은 마카오 반도가 되었다. 그 남쪽의 타이파 섬, 콜로안 섬 두 섬 사이를 매립해 생긴 지역이 코타이 지역이다. '마카오' 지역은 유네스코 문화유적에 등재된 건물이 밀집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화된 지역, 콜로안은 남중국과 포르투갈 풍이 섞인 전원지역이며 코타이 지역에는 대형 카지노가 자리 잡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마카오 타워'에 가보기로 했다. 지도상에서는 숙소가 있는 세나도 공원 근처에서 남쪽으로 걷다 보면 사이완과 남반 호수가 나타날 것이다. 마카오 면적이 서울 관악구 정도라는 말에 걸어서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마카오 지도가 나오는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복잡한 골목을 벗어나 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래된 아파트와 좁은 골목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에 섞여 걷다 보니 마치 '1990년대 홍콩 영화'에 들어온 기분이다. 어디선가 영화배우가 멋지게 등장할 것만 같아서 가슴이 뛰었다. 좁은 길을 벗어나 큰길에 접어들었다. 마카오는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자동차 진행 방향도 한국과 반대다. 로터리가 많고 도로가 구불구불하다. 마카오 타워를 향해 가는 도로 여기저기 공사 중인 곳이 많이 보였다. 공사장에서 들리는 소음도 무척 심하다. 오래된 건물 사이에 불쑥 현대식 건물이 솟아있고, 길가에는 새로운 건물이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포르투갈이 점령했을 때 지어진 작은 건물과 공원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저녁이 되자 공사장은 조용해졌다. 소음이 멈추고 한적해진 길에는 달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습도가 높은데도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표지판은 한자와 영어, 일본어, 포르투갈어로 적혀있고 어떤 곳에는 (아마도 한국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곳이 아닐까 짐작했다) 한글로도 표시되어 있었다. 중국어를 한 마디 못해도 여행하는데 불편하지 않았다.


한동안 걷다 보니 불어오는 바람 느낌이 다르다. 아까보다 물을 더 머금은 촉촉한 시원함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인공호수'라는 사이완 호수가 눈 앞에 펼쳐졌다. 호숫가는 서울의 한강처럼 강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낚싯대를 드리운 채 태평하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부모를 따라 나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다. 강 건너에는 화려한 호텔들이 조명을 켜기 시작하고 동쪽 저 멀리서 '마카오 타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카오 타워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쯤이었다. 언젠가 '런닝맨 프로그램'에서 마카오 타워가 등장한 것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때 출연진들이 게임을 하고 벌칙으로 번지점프를 하거나 줄 하나에 매달려 탑 주위를 걷는것을 보고 내 발끝이 짜릿했었다. 런닝맨에서 본 것처럼 실제로 번지점프 하는 이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입장료는 성인 165 MOP (24,500원 정도). 타워는 이미 파장 직전인듯 관람객이 거의 없다. 친절하게도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와 준 직원은 58층과 61층에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8층까지 올라가는데 귀가 먹먹하다. 올라가는 속도가 아주 빠른 모양이었다. 58층은 실내 전망대로 사이반 호수의 야경이 펼쳐져 있다. 북쪽에는 화려한 호텔 야경이, 남쪽에는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이 펼쳐졌다. 그러나 시야가 깨끗하지 않았다. 전망대 바닥에 투명한 부분이 있어서 아래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심지어 탑 아래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구름이 끼어 있었고 미세먼지도 나쁨 농도였다. 희뿌연 창 밖을 바라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58층에서의 실망을 뒤로하고 61층으로 올라갈 때만 해도 내심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번지 점프를 할 수 있다는 61층에서는 특별한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과연 61층에는 번지점프와 탑 주위 걷기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밤이 늦은 탓인지 체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타워에서 이십여분 정도만 머무른 후 내려오고 말았다. 나중에 인터넷 후기를 검색해 보니 마카오 타워에는 일몰 직전에 올라가서 낮 풍경도 즐기고 노을을 감상한 후에 야경도 함께 즐기면 좋다고 한다. 실망감을 안고 타워를 나오면서 우리는 만약 다시 마카오에 갈 기회가 된다면 낮에 올라가 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마카오 타워 벽에 장식된 사진, 모델이 번지점프 직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타워를 나와 사이완 호수와 붙아있는 남반 호수를 따라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때쯤 핸드폰 만보기 어플에서 내가 2만 3천 걸음을 막 돌파했다는 알림이 도착했다. 집순이인 나에게는 거의 천문학적인 숫자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그 숫자를 보자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힘들어 못 가겠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다. 숙소로 돌아가려면 어둑어둑하고 인적이 드문 남반 호수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걷는 수 밖에는. 그때였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듯 화려한 호텔들이 등장한 것은. 배고프고 지친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집에 홀려 가듯 우리도 빛을 향해 걸었다.



그곳이 윈 센트럴 쇼핑몰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화려하게 불이 켜진 그곳은 한마디로 '부'의 광고판 같은 곳이었다. 구찌, 샤넬, 베르사체 같은 유명 명품 브랜드 늘어선 가게 앞에는 엄청난 양의 전구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호숫가에는 볼 수 없던 수많은 사람들도 그곳에 있었다. 다들 사진을 찍고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행복한 표정이다. 어둠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빛의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방금 전까지의 피곤이 싹 달아난 듯 걸음이 빨라진다. 신기한 일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었음에도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걸을 때는 걸음이 무거웠고 밝은 곳을 걸을 때는 힘이 난다. 어두운 호숫가를 걸어갈 때는 기분도 음침했고 우울하고 불안했는데 단지 밝은 곳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빛'나는 동네에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달라지는 것일까? 그동안의 피곤함을 잊었다.

윈 센트럴 쇼핑몰에 끝나는 곳에서 수 많은 호텔을 만났다. 마카오 타워 위에서 보던 호텔이 정작 눈앞에 펼쳐지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엄청난 규모의 호텔이 수십 개, 번쩍이는 조명을 켜고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다. 솔직히 나 같은 집순이에게는 처음 보는 광경이다. 호텔이 이렇게 많은 것도, 그 호텔들이 하나하나 규모가 대단한 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다. 찬란한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꿈꾸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부터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L에게 아무 호텔이라도 들어가 보자고 했다. 나는 집순이이지만 호기심도 많다. 궁금한 게 있으면 꼭 해보고 싶어 한다. 그건 함께 여행 중인 L도 마찬가지여서 그동안 여러 장소에 여행을 다녔지만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또 의기투합한 우리는 주위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호텔, '그랜드 리스보아'를 구경해 보기로 했다.

로비에는 명품 자동차와 보석으로 된 장식품, 현란한 샹들리에가, 명품 시계와 가방, 옷들로 가득하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에서 알리바바가 찾아낸 보물들이 저렇게 생겼을까, 중국의 황제들이 모아둔 보물이 저런 것들일까. 마치 돈이 뭔지 구경시켜주겠다는 듯 문을 활짝 열어두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그 화려함과 가격에 로비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수십 번 감탄을 한다. 소위 대박 난다는, 황금이 찬란한 꿈을 꾸고 있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 저 찬란한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다 멈추는 곳에는 '카지노'라는 간판이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그 글씨를 보자마자 정신이 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움찔 놀랐다. 얼마 전 라스베이거스에 카지노 사업이 번창하는 바람에 도박에 전 재산을 탕진하고 폐인이 된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호텔의 화려함은 눈으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집순이인 평범한 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레이트 리스보아 호텔에서 나와 근처를 조금 더 둘러보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밤 11시쯤 숙소에 도착해서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은 그날 하루 내 걸음수가 2만 8천을 넘겼다고 알려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