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울 성당 앞이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우리는 가운데 있는 문을 통과해 성 바울 성당 뒤편으로 이동했다. 성당은 거대한 벽 하나로 화려한 앞면에 비해 뒤쪽은 철제 구조물이 함께 서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아름다운 문화유산의 앞과 뒤' 정도 될까. 그리고 그곳에도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마카오가 세계적 관광지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놀랍게도 서양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아시안들이었다. 대부분 중국어를 쓰는 중국인들 같은데 한국인들도 많다. 젊은 커플들이나 가족여행 오신 일행도 많이 보인다. 덕분에 내가 아직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늦 봄처럼 따뜻한 날씨, 나뭇잎이 무성한 공원에는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몬테 요새'다. 몬테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카오 시내를 볼 수 있었다. 몬테 요새도 그렇고 성 바울 성당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되어 있다. 햇살이 따갑고 계단을 많이 올라온 탓에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나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키 크고 덩치 좋은 남성들이 나타났다. 정복을 입은 것이 문화재 시설 경비원이 아닐까 싶은 외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대포에 올라타거나 성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있는 관광객을 보면 큰 소리로 경고를 준다. 경비원의 호통 소리에 대포에 올라타고 성벽 위를 걸으며 사진을 찍던 이들이 얼른 내려온다. 얼마 전 경복궁에 갔을 때 외국에서 수학여행을 온 듯한 중 고등학생들이 돌 석상을 발로 차며 장난치는 것을 보고 무척 화가 났던 적이 있다. 한적한 고궁에서 그 학생들을 제지하는 분들도 안 계셨다. 보다 못한 내가 다가가 영어로 '하지 말라!' 고 하자 그들은 제 발 저렸는지 '우리는 영어를 못한다.' 면서 흩어져 버렸다. 문화재란 부서지거나 고장 나면 복원하기 어려운 것인데 우리 한국에서도 고궁에 덩치 좋은 경비원들을 취직시켜 함부로 장난치는 관람객들을 말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에 보이는 건물은 마카오 박물관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라 관광코스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나는 이 곳을 건너뛰기로 했다. 대신 무작정 걷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생활'이란 참 고단한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부터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아니 심지어 꿈을 꾸는 동안에도 살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어렸을 때는 뭔가를 배워야 했고 조금 자라서는 배운 것을 잘 써먹어야 했다. 직장에서는 경쟁을 해서 이겨야 했고 이기지 못하면 뒤떨어진다. 치열하게 달려가는 이들 사이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리는 시늉이라도 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그렇게 보냈던 하루 하루가 쌓였고 지쳐갔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생활'에서 벗어난 순간을 의미한다. 경쟁에 대한 불안도, 인간관계에 대한 압박도 잠시 접어둘 수 있다. 그동안 급하게 살아오느라 생긴 마음의 생채기들은 생활을 벗어나는 순간 서서히 아물기 시작한다. 특히 이렇게 오래, 천천히 걷는 여행 동안 마음에 남았던 수많은 상처들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열 발자국쯤 앞서서 걷던 L 이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가리켰다. 마카오-중국 국경 Border Gate (Portas do Cerco)에 도착한 것이다. 마카오 최 북단에 위치한 국경에 있는 이 관문은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로 국경 업무를 하는 곳은 관문 뒤에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먼 곳에서 봐도 줄을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마카오 국제공항에서 내렸을 때 생각보다 공항 이용객들이 적어 놀랐었는데 이제 보니 마카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국제공항보다는 마카오-중국 국경 쪽을 더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로 북적이는가 하면 이 관문을 찍는 동안에도 지나다니는 이들이 카메라에 잡혀 여섯 번이나 다시 찍어야 했다.
아주 오래전에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내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진 계기가 있었다. 그 이후 적어도 겉으로 내 삶은 별문제 없이 흘러왔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날의 결정을 수 없이 후회했었다. 잠 못 이루다 겨우 잠든 꿈에서 깨어나면 눈물을 흘렸고 괴로움과 탄식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후회를 하는 도중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삶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내고 있는 내가 말이다. 국경 관문 앞에 서 있을 때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떠오른 것은 하루키의 소설 한 부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에는 시마모토의 대사가 있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있는 일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아. 이만큼 와버렸으니 이제 와서 뒤로 되돌아갈 순 없잖아. 그렇지?"
말 그대로 국경의 남쪽에 서서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밀려드는 인파를 바라보고 있던, 여름처럼 더운 크리스마스이브 오후에 어울리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할 수 있는 대답이다. 회한을 얼룩진 수많은 밤을 보낸 지금 시간을 돌이킨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후회와 고뇌의 밤 동안 슬픔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법을 터득했고 슬픔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은 새로운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경 관문 바로 앞에는 공용 버스 승차장이 있다. 마카오 국제공항 앞에서 처럼 호텔 셔틀버스가 들어오고 나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묵는 호텔 셔틀버스를 발견했다. 냉큼 줄을 서고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가 묵은 호텔까지는 호텔 셔틀버스로 겨우 15분 정도 걸린다. 아무리 명소를 구경하며 걸어왔다지만 걸어오는데 거의 세 시간이나 걸린 것과 비교해 보면 정말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여섯 시다. 샤워를 마치자마자 침대에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L 이 나를 깨운 것은 밤 열 한시쯤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화난 목소리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렇게 잠만 잔다는 게 말이 되느냐? 나가서 놀자." 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나는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앉은 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밤 열 한시에 여는 곳이 없지 않을까? 그냥 티브이보다 잠이나 자자." 고 했지만 L은 내가 잠든 사이에 근처에서 유명한 중국 전통 음식점을 검색해 두었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는 수 없이 청바지에 셔츠, 겉옷을 걸쳐 입고 L을 따라 밤거리에 나섰다. 다시 말하지만 집순이인 나는 저녁에는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더더구나 그곳은 낯선 여행지 마카오가 아닌가. 하고 호텔 밖으로 나섰더니 웬걸. 생각보다 길에는 사람들이 많다. L과 함께 걷다 보니 호화스러운 중국 음식점이 나타났다. 1층과 2층에 홀이 있고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말소리로 떠들썩하다. 우리는 종업원의 안내대로 편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판은 중국어로만 적혀있을 뿐 사진이 없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해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칭다오 맥주를 주문하고 음식은 천천히 주문하기로 했다. 음식 값은 한 가지에 200 에서 480 홍콩 달러 정도. 정통 중국 (사실은 광둥 요리겠지만) 요리를 먹게 될 거라는 기대감에 심장이 뛴다. 한동안의 의논 끝에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주문했다. 외국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새삼 알게 되는 게 있다면 우리나라 음식점에서는 음식이 참 빨리 나온다는 사실이다. 마카오의 식당에서는 한 가지 요리가 나오는데 거의 삼십여분이나 걸렸다. 맥주를 마시며 삼십여분을 기다린 후에야 삼겹살말이 요리가, 그다음 삼십여분 후에는 치킨요리가, 이어서 다음 삼십여분 후에 해산물 요리가 도착했다. 식당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남지 않았고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겼다. 돼지고기 삼겹살 요리를 직접 들고 나온 것은 주방장님이신 듯했다. 중국어로 요리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 같았는데 우리가 멀뚱멀뚱 못 알아듣는 것 같은지 "일본인이냐?" 고 물어보신다. 우리는 "한국인이다." 고 대답했고 그분은 서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를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매콤 달콤 새콤한 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날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대신 식전에 나오는 뜨겁고 진한차는 향기가 좋아 계속 마셨다. 내가 음식을 예의상 먹은 것에 비해 L은 접시를 다 비웠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다시 누우니 새벽 세시쯤이다. 만보기는 내가 35,200 걸음을 걸었다고 알려주었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지금 나는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은데 너는 먹고 싶은 음식 없어?"
내가 묻자 L 은 아까 식당에서 먹은 음식으로 배가 불러 다른 음식 생각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작은 소리로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어쩌면 잠결이었을까, 내 꿈속에서였을까, 아니면 진짜 들은 것이었을까 궁금해하며 나는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