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여행

콜로안 빌리지 - 길을 잃으면 새로운 길을 만난다

by 영인

여행 3일째 아침은 맑았다. 전날 하늘을 가리던 구름도 사라지고 미세먼지 농도도 좋은 편이라고 한다. 새벽에 잠들었는데도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으로 커피와 에그 타르트를 먹고 있는데 L이 오늘은 콜로안 빌리지(Coloan Village)에 갈 거라고 했다. 여행 책에 의하면 콜로안 빌리지는 한적한 어촌 마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볼 만한, 에그 타르트가 유명한 곳이라면서 지난 3일 동안 지치도록 걸었던 것을 감안해 오늘은 쉬어가는 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에서 나와 가까운 윈 팔래스 호텔로 향했다. 마카오는 북쪽 마카오 반도와 남쪽 코타이 지역에 유명 호텔이 밀집되어 있는데 윈 팔래스 호텔은 북쪽 마카오와 남쪽 코타이에도 호텔이 있다. 같은 호텔이라 셔틀버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북쪽 마카오에 있는 윈 팔래스 호텔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남쪽 코타이 지역에 있는 윈 팔래스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콜로안 빌리지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택시비는 기본요금이 19 홍콩 달러( 3000 원 정도)이고 마카오 면적이 크지 않아 오래 타지 않는다. 택시 요금은 한국보다 약간 싼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콜로안 빌리지에서 처음 마주한 곳은 자이언트 판다 파빌리온 (Macau Giant Panda Pavilion, Panda Gigante de Macau)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터와 동물원이 함께 조성된 공원이다. 자이언트 판다는 따로 입장료 (10 홍콩달러; 1500 원 정도)를 내야 볼 수 있는데 동물원 다른 부분은 공짜였다. 판다는 따로 관리하는 모양으로 특별한 건물에 있었는데 운 좋게도 판다가 식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판다가 있는 건물에서 나와 공원 안쪽으로 돌아가니 숲 안으로 통하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 옆에 있는 지도를 보니 콜로안 트래킹 코스가 표시되어 있는데 계단을 따라가면 콜로안 주위를 감싸며 한 바퀴 돌아갈 수 있다.

공원은 규모가 크지 않아 다 둘러보는데 이십여분 정도 걸렸다. L이 동물원 앞에서 택시를 타고 학사 비치로 이동해 해변 마을 구경을 하자는 의견을 낸것은 아침 열 시쯤. 해변 마을을 구경하고 그곳 포르투갈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자는 말에 나는 다른 의견을 냈다. 내가 알기로 콜로안 빌리지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가는것이 가능한 넓이였다. 해변 마을까지 걸어가 보고 싶다면서 자유여행의 묘미는 발길 닿는 곳으로 마음이 향하는 쪽으로 걸어가도 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호기로운 내 모습에 잠시 생각하던 L이

-어제도 무리한 것 같은데 정말 괜찮겠어?

하고 다짐을 한다. 평소에 운동으로 다져진 L의 체력은 평범한 집순이인 나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좋다. 체력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니 여행 코스는 체력 약한 나를 중심으로 정해진다. L이 좋은 사진을 많이 찍으려면 도보 여행이 최선이라던 말을 한적이 있는데 솔직히 나때문에 가 볼 곳을 생략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항상 미안했다. 그래서였다. L이 택시를 타겠다고 했을때 굳이 걸어가겠다고 우긴 이유는.


내 말이 반가웠던 모양으로 L은 등에 짊어진 카메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걷기 시작한다. 나도 얼른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등에 멘 L에 비해 텅 빈 배낭에 작은 노트와 펜만 들고 가는 내 쪽이 훨씬 편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곧 내 제안을 후회했다. 공원 이후 맞닥뜨린 길은 계속 오르막이었다. 경사도 꽤 가팔라서 숨이 헉헉거린다. 구불구불 모퉁이를 돌면 끝나려나 하는 오르막이 또 나타났다.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L이

- 남산 올라가는 기분인데

하며 빙긋 웃는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 이상하지? 이 정도 경사진 길이면 자전거 타기 좋을 텐데 이상하게 자전거가 안 보이네.

L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길가에 표지판이 등장했다. 나무 꺾지 말라는 표시와 함께 자전거 금지 표시도 있다. 자전거 통행 금지라 자전거 타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대는 L과 달리 나는 오르막이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으로 이미 지쳐갔다. 구름이 걷힌 탓에 햇빛이 선명하다. 계속 걸어가는 동안 등에서는 땀이 흐른다. 겉옷을 벗고 반팔 티에 반바지 차림이 되자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식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오르막 길인 것만 빼면 울창한 나무 덕분에 그늘이 많고 덥지 않은 기온 덕분에 걷기에는 참 좋은 날씨였다.

한참 걷다 보니 드디어 산 정상에 올랐는지 오르막이 끝나고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몇 번이나 " 아, 힘들어." 중얼거리던 나도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마카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보던 L이

- 이 길로 계속 걸으면 '아마 컬처 빌리지(Ama Culture Village)'라는 곳이 나올 거야. 번역해 놓은 걸 보니까 '아마 문화 마을'이라고 되어 있던데 점심은 그쪽 근처에서 먹자.

-컬처 빌리지라면 민속촌 같은 곳일까? 먹거리 장터 같은 데가 있으려나? 배도 고프지만 커피 한잔만 마셨음 좋겠어.

대화 도중 아무것도 없던 산속에서 저 멀리 웅장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멀리서 봐도 큰 규모에 화려한 외관, 고풍스러운 건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멀게만 보이던 건물이 눈 앞에 등장했다. 이 곳이 바로 아마 문화 마을이구나 싶어 감동이 밀려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점심을 먹을 만한 카페가 있을까? 마카오 문화는 어떤 것이 있으려나 기대에 차 화려한 정문을 향해 오르는 돌계단이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은 내가 생각하던 의미가 아니었다. 한국 민속촌 같은 곳일 거라 기대했는데 실상은 아마 여신을 모시는 거대한 사원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 그대로 '사원' 말이다. 음식이 있더라도 먹기에 민망할 정도로 경건한 침묵과 진한 향냄새로 가득한 곳이었다. 당연히 커피나 음식을 파는 곳도 없다. 예상과 다른 것에 당황하면서도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마카오에서 봤던 작은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향 피우는 곳과 기도하는 곳이 있는데 뒤에 있는 경전에 경고문 같은 것이 붙어있다. 적힌 글은 읽지 못하지만 CCTV에 찍힌 남성의 얼굴을 확대해서 붙여놓은 것을 보면 누군가 헌금함에서 헌금을 훔쳐간 모양이었다. 몇 년 전에도 미국의 교회에서 봉헌금을 훔쳐간 도둑이 CCTV에 찍혀 뉴스를 장식한 일이 있었다. 봉헌금을 탐내는 도둑은 그 지역과 종교에 상관없이 어디에나 있는 모양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아마 여신은 마조 신, 하늘의 성모, 천후(天后), 천비(天妃)), 마조 할머니 등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해상의 안전과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도와주며, 평안과 재해를 막아주는 바다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해상을 보호하는 신이었으나 후에 점차 확대되어 산인이나 수공업자를 보호하고, 난산이나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도와주는 신으로 인식이 넓어졌다고 한다. 이 새하얀 석상도 산꼭대기에 서서 콜로안 빌리지를 내려다본다. 이 신을 믿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도울 것이 없을까 미소로 묻고 있는 모습이다.

커피를 마시지 못해 아쉬운 표정으로 사원 주차장에 서 있으니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기사님이 영어로 도와줄 것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택시를 기다린다고 대답했더니 이곳에는 택시가 없을 거라면서 아무 호텔 셔틀버스나 타고 내려가라고 하신다. 공짜라는 것도 덧붙이면서.

-많이 힘들지? 여기서 셔틀버스 기다리자.

뒤따라 나온 L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주차장에 호텔 셔틀버스가 서 있는데 기사님은 안 계신다. 타고 오신 분들이 사원을 구경하는 동안 기다린다고 하시는데 도착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는 대신 지도를 따라 걸어가 보기로 했다.

산에서 동쪽을 향해 내려가는 길, 조용한 산길에 새소리가 울리고 아래에는 이국적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L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동안 오후 두 시가 다되어 간다.

한적한 산길을 걷다 보니 학사(黑沙, Hac sa) 비치에 닿았다. 한자로는 검은 모래라는데 해변은 검은색이 아니라 평범해 보인다. 한 겨울 크리스마스에 마카오 학사 해변에서는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는 중이다.

해변가에 있는 포르투갈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땀을 흘리고 걸어온 탓에 목이 마른데 물은 돈을 내고 사야한다고 한다. 맥주를 주문하니 포르투갈 맥주가 나왔다. 볶음밥과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함께 나온 빵이 무척 맛있다. 다른 맛을 첨가하지 않아 담백한 식빵 맛 그 자체인데 오븐에서 따뜻하게 데워 나오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버터와 함께 서빙하지만 나는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빵을 뜯어 버터 없이 먹었다. 볶음밥은 찰기 없는 쌀로 만들었고 스테이크는 간장 베이스로 만든 소스를 쓴 모양이다. 가격은 1인분에 150 - 250 홍콩 달러 정도인데 빵을 더 달라고 했더니 공짜로 더 주신다. 빵이 맛있다고 했더니 나갈 때는 따로 담아주셨다.

식사 후 커피를 주문했더니 아주 진한 에스프레소를 가져다주셨다.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셔서 어느 정도 희석시켜 마셨지만 커피맛은 빵 맛을 이기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니 오후 3시다. L의 말로는 오전에 동물원 구경을 마치고 택시로 오려던 곳이 바로 학사 비치였다. 굽이 굽이 산길을 걷느라 세 시간 정도 걸렸지만 택시로는 금세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아침에 택시를 타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지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문화촌이라는 곳이 민속촌 같은 곳이 아니라 아마 여신을 모시는 사원이라는 것도, 학사 비치로 향하는 산길을 걸으며 느꼈던 것들도 몰랐을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인생도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쉬운 길을 선택한 이들이 빠른 시간 내에 편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겠지만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들이 목적지를 찾아가는 동안 겪어낼 우여곡절을, 오랜 시간 동안 깨달아가는 깊고 무거운 것들은 얻지 못한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걸어온 산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점심식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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