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여행

바닷가 마을의 에그타르트

by 영인

점심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해변가를 따라 남서쪽을 향해 걷는다. 태양이 우리를 따라오는 듯 눈이 부신다. 덥지 않지만 춥지도 않다. 습도가 많지만 답답하지 않다. 말 그대로 날씨는, 기온은 걷기에 딱 좋다. 선글라스를 쓰고 가벼운 차림으로 해변을 걷다 보면 꽤 낭만적인 기분에 빠진다. 배도 부르겠다, 맥주도 한잔 걸쳤겠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마을 길에 사람이 없는 것에 비해 해변에는 파도와 놀고 있는 이들이 꽤 많다. 주로 가족 단위로 놀러 온 듯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 애들을 따라다닌다. 해변길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그저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작년 초겨울에 '속초'에 갔을 때 속초 바닷가에도 둘레길이 잘 되어있어 감탄했는데 마카오 해변과 속초 바닷가 둘레길 풍경이 무척 비슷하다고 느끼며 걸었다. 바닷가라 햇빛을 가릴 구조물이 거의 없었다. 다른 분들은 햇빛을 가리느라 커다란 우산을 쓰고 왔는데 나는 모자도 없이 간 덕분에 선글라스만으로 햇빛을 버텨내며 다른 분들의 크고 검은 우산을 부러워했다.



얼마쯤 갔을까, 해변 산책로가 끝났다. 돌에 가로막힌 그곳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해변에서 벗어나 마을 쪽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다. 한국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한동안 구경하고 있으려니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비는 6 홍콩달러다. 2 홍콩달러 동전 세 개를 준비하고 있다가 버스 앞 요금 넣는 곳에 집어넣었다

승객들로 가득한 버스는 산비탈을 올라 우리를 작은 마을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여행 책에서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어서 자전거로 구경하기 좋다고 적혀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때라서 인지 마을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옛날에 지어진 마을이라 길이 좁고 해변 가에 주욱 차를 세워놓아서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했다. 거기에 언덕이 곳곳에 포진해서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한 바퀴 돌며 구경하려던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는 자전거 대신 걸어서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다. 영화 '도둑들'의 배경이 된 '성 자비에르 성당'에 도착했는데 글쎄, 크리스마스 미사를 끝으로 문을 닫아 두었다. 문이 닫힌 것을 보고도 믿어지지 않아 한동안 그 앞에서 서성였지만 하는 수 없다. 그곳에 모셔진 김대건 신부님은 결국 뵙지 못하고 아쉬운 대로 근처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에 들렀다. 마카오에 몇몇 유명 에그타르트 가게는 문 앞에서 길가까지 길게 줄이 이어져 있어서 금세 알 수 있다. 평소 맛집 앞에 줄 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 에그타르트는 특별하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카오에서 먹는 에그타르트와 빵은 꽤 맛있었다. 한국 빵은 아기자기하고 복합적인 맛이라면 이곳 빵은 훨씬 담백하다. 빵은 순수한 기본 식빵 맛이고 에그 타르트는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크고 진하다. 어느 식당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뜨겁고 진한 차와 잘 어울리는 빵이다. 꽤 긴 시간 줄을 서서 산 에그타르트 박스를 배낭에 고이 집어넣은 후 우리는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코타이를 향해 출발했다. 마카오에 도착한 후 내내 호텔 셔틀버스나 택시만 탔었다. 택시도 그렇고 호텔 셔틀버스도 관광객이나 호텔 투숙객이 사용하는 것이어서 승객들은 외국인들이다. 그런 것을 타면 어딘지 들뜬, 관광지에서의 노곤한 흥분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날, 일반 버스를 탄 것이 마침 퇴근 시간이어서 인지 하루 일과를 마친 피곤해 보이는 이들과 마주했다. 피곤한 표정으로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는 이들은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만나는 우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여행객인 우리에게는 신기하고 특별한 공간인 이곳도 마카오 주민들에게는 삶의 전쟁터였겠구나 깨닫는다. 우리는 이곳에서 일상을 탈피한 새로운 활력을 얻고 가는데 이곳 주민들은 한국에 와서 그것들을 얻고 가지 않을까. 여행이란 그런 게 아닐까. 삶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즐거운 행위. 일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행복한 것 말이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일상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지면 그곳에서 사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은 게 아닌가. 집 밖에 먼 곳으로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우리도 일상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막연히 먼 곳만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버스에서 내린 곳은 코타이의 '스튜디오 시티 빌딩(Studio City)'으로 건물 앞에 설치된 커다란 8자에는 작은 캡슐이 달려 있어 천천히 돌아간다. '골든 릴( Golden Reel)'이라고 해서 전망대처럼 야경을 볼 수 있다. 입장료는 70 홍콩달러( 15,200 원 정도)였다. 줄을 서서 타고 보니 마카오에서 살고 계신 젊은 부부와 귀여운 두 꼬마가 우리와 함께 탔다. 바닥이 투명해서 밑 부분이 다 보이는데 작은 꼬마 녀석들은 겁도 없이 그걸 들여다보고 있다. 무서워 밑을 못 보는 내가 우스운지 아이들이 깔깔대며 짓궂게 나를 놀려댔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참 귀엽다. 장난치는 아이들의 보송한 볼에 손을 대어 보면 세상 어느 곳에 살아도 아이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마카오에 새로 생긴 기차 노선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되어서 공짜라고 덧붙였는데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마카오의 밤은 휘황하게 빛나며 다시 시작된다. 빛과 레이저의 향연으로 눈이 부시다. 파리지앵 호텔 앞에는 파리의 에펠탑과 똑같이 생긴 탑이 있고 윈 팔래스 앞에는 음악과 빛이 섞인 분수쇼가 진행 중이다.

마카오는 예전에 작은 섬마을이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이 점령했을 때 중국 고유문화와 점령자들의 것들이 섞여 독특한 유적을 남기고 떠난 후 마카오 사람들은 그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 남겨두고 보존하며 세상에 내어놓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작지만 볼 것 많은, 관광객에게 최적화된 관광도시 마카오는 어둠이 내리면 거대한 호텔로 가득한 환락의 도시로 변한다. 마치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가듯 사람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로 모여든다. 그러나 가난하고 검소한 배낭여행족인 우리는 코타이에서 마카오로 가는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조용한 숙소로 돌아갔다. 가방에 담겨온 '톨스토이'의 책을 마저 읽기 위해, 오늘의 기억을 적어두기 위해, 그리고 편안한 내일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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