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날

2020년 5월 28일 목요일 날씨: 갑자기 여름처럼 더움

by 영인


마루는 새로 데려올 강아지 이름이다. 강아지를 데려오기 전에 이름부터 지었다. 이름뿐일까? 이름이 각인된 하네스에 목걸이까지 준비해 두었다. 크기를 가늠해 옷과 신발, 강아지 슬링백과 강아지 이동 백까지 준비했다.

"언니, 정말 그 강아지 데려올 거야?"

평소에는 두 달에 한 번 전화할까 말까 하는 동생이 매일 전화를 해서 물었다. 내가 데리고 올 거라고 하면

"강아지 키우려면 돈도 얼마나 많이 드는데. 나도 예전에 강아지 덥석 데려왔다가 개고생을 했었어."

하고 걱정한다. 나는 고집이 별로 세지 않다. 뭘 하고 싶다고 했다가도 부모님이나 동생이 반대하면 순순히 마음을 접고는 했다. 동생은 아마 내가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 나 이번에는 꼭 키울 거야. 정말 키워보고 싶었단 말이야."

나답지 않게 고집을 부렸다.




마루를 데리러 가는 날.

마루가 살던 곳은 집에서 꽤 멀어서 강아지 이동캐리어를 준비해 끌고 지하철을 탔다. 무척이나 설레면서도 이상한 녀석이 오지 않을까 긴장이 되어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만약 이상한 강아지라면 안 데리고 와야지 결심하고 목적지에서 내렸다. 마루가 사는 집은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루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젊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지금 데리고 나갈게요."

그녀가 말해준 편의점 앞으로 가고 있는데 하얀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순간 내 눈이 강아지를 향했다.

저 아이구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루의 주인은 그동안 마루가 쓰던 물건을 잔뜩 갖고 나오셨다. 강아지 이동 캐리어를 쓴다고 해도 짐이 너무 많아서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강아지는 나를 경계한다. 손을 대려 했더니 막 짖는다.

'에코. 큰일이다. 어떻게 데리고 가지? 지하철에서 막 짖어대면 어떻게 할까.'

고민스럽다. 강아지가 반항하니까 내 힘으로는 이동장에 못 넣는다. 어쩔 줄 모르는 나 대신 마루를 안고 있던 주인이 이동장에 밀어 넣더니 지퍼를 올려 버렸다. 마침 택시가 왔고 나와 이동장 캐리어는 순식간에 택시에 실렸다.

"잘 키워 주세요."

마루의 주인이 말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강아지를 주면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내주던 분이다.

" 좋은 아이인데 제가 사랑을 못 줬어요.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녀의 말에 대답할 경황도 없이 택시가 떠났다.


기사님께서 다행히 친절하게 도와주셔서 지하철역에 곧 닿았다. 이동장 캐리어에 녀석의 짐을 얹고 끌고 가니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처음 겪는 일에 놀란 듯 마루도 이동장에서 조용히 밖을 내다보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았다. 마루가 낑낑댈까 신경 쓰면서도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데리고 가서 잘 키울 수 있을까 싶다가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도 오간다. 한낮이라 텅텅 빈 지하철에 코로나 여파로 대부분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녀석은 이동장 캐리어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만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이동장 캐리어에 태운 채로 집까지 온 것이다. 현관에 들어와 이동장을 열어주니 마루가 툭 튀어나온다. 눈이 엄청 사납다.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표정이다. 목에 하고 온 하네스를 풀려고 했더니 나를 물려고 덤빈다. 순간 나도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녀석에게 겁먹을 수는 없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녀석의 하네스를 벗겼다. 그리고 내가 준비했던 마루 이름이 각인된 하네스를 해주었다.

녀석은 모르겠지.

그건 나와 마루가 새로 연결되는 순간인걸.

나 혼자 사는 집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 순간인걸.

내가 마루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표현인걸.


다행히 하네스를 하고 집을 나서니 쫄랑쫄랑 따라온다. 산책을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녀석을 데리고 걸어서 십오분 거리에 있는 동물 병원으로 갔다. 미리 예약해 둔 덕분에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중성화 수술도 해야겠고, 등록도 해야겠고 주사도 여러 개 맞아야겠는데요."

마루의 몸무게를 쟀다. 3.6 킬로다. 다음으로는 강아지 인식칩을 넣는다. 굵은 주삿바늘 같은 걸로 녀석의 피부 아래에 칩을 넣는데 몇 초도 안 걸린다. 예방 접종을 여러 개 맞아야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맞으면 힘들 거라며 이번에는 두 개를 맞고 1 주일 후에는 나머지를 맞기로 했다.

"중성화 수술은 꼭 해야 하나요? "

내가 질문하자 선생님은

"중성화 시켜줘야 병도 없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

하신다. 그래, 우리 겨우 첫날이지만 오래 함께 살아갈 미래를 꿈꿔보는 것도 좋겠지.

중성화 수술은 2주 후로 잡았다.



집으로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녀석을 데리고 욕실로 가서 발을 닦아주고 준비해둔 개집과 쿠션을 소개해 주었다. 전 주인이 주신 쿠션을 꺼내 깔아줬더니 마루는 쿠션에 올라가 나를 모른체하고 있다. 녀석도 나도 서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억지로 다가갈 생각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친해질 시간이 많을 테니까.

사료를 꺼내 주고 물도 챙겨두고 나는 서재에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 쓰고 있는데 이 녀석, 나를 따라와서 곁에 누워있다. 서재에서 나와 침실로 가도 따라온다. 침대에 누웠더니 냉큼 침대 위로 뛰어올랐다.

"네 집에서 자."

말로만 그렇게 하고 녀석의 자리를 내주었다. 내 곁에 누운 녀석은 마치 자신이 침대의 주인인 것처럼 편하게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평소처럼 티브이를 보다 끄고 음악을 들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내가 뒤척일 때마다 고개를 들고 나를 살피는 마루 덕분에 잠을 내내 설치고 말았다.

깜박 잠이 들었던 내가 새벽에 깼을 때 마루는 내 몸에 따뜻한 몸을 딱 붙이고 누워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제서야 마루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작은 전등을 켜고 잠든 마루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루."

작게 마루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언젠가는 네가 네 이름을 알아듣고 나를 향해 달려와 주기를.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