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첫 산책

2020년 5월 29일 날씨; 점점 더워짐. 곧 여름이 오는 느낌.

by 영인





평소처럼 새벽에 눈을 떴다. 침대 위에 놓인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 뭉치. 내 몸에 꼭 닿아 있는 것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녀석도 놀라 깼는지 동그란 검은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불을 켰다. 아침 5시 반이다.

내가 침대에서 나오는 걸 보더니 녀석도 쫄래쫄래 따라 나왔다. 아직은 어색한 사이. 녀석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 척 몸을 쭉 늘여 스트레칭을 하고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서도 집안을 한 바퀴 도는 내 발끝을 따라다녔다.

녀석이 없을 때는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을 나갔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리해볼까 한다. 새 식구가 생겼으니 분위기를 바꿔보자.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멀찍이 앉아있는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 마루!'라고 불러도 반응이 없다. 아직은 이름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곁으로 다가와 얼씬대길래

"산책 갈래?"

했더니 냉큼 내 앞에 누워 애교를 부렸다. 하네스를 매는 것도 아주 협조적이다. 아직은 어색한 우리는 어쨌거나 집에서 나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주위에 작은 공원이 있다. 테니스장도 있고 아이들 놀이터에 산책로도 있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주로 하천을 걸었는데 녀석이랑은 공원부터 한 바퀴 돌아볼까 싶다. 서툴게 목줄을 잡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녀석은 무서운지 낑낑댄다. 어쩌지, 생각하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내려갔다. 녀석은 긴장한 듯 공기 냄새를 맡는다. 그래 봐야 손 소독 젤 냄새뿐일 텐데 싶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뒷다리를 들고 쉬를 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배변 패드에 한 번도 실례를 하지 않았는데 산책하는 동안에는 쉬만 대여섯 번, 대변도 한 번 시원하게 보았다. 미리 준비해둔 강아지 응가 봉투를 사용했다.



공원에 도착하니 동네 강아지들이 세 마리나 산책 중이다. 나에게는 어색한 녀석이 꼬리를 바람개비처럼 흔들며 강아지들을 향해 달려갔다. 냄새를 맡고 서로를 향해 뛰어오른다.

"어머나, 귀여워라. 얘는 몇 살이에요?"

처음 보는 분이지만 강아지끼리 친해지니까 나에게도 말을 거신다. 순식간에 나도 마루도 동네 친구가 생겼다. 산책을 한 시간쯤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 앞에서 하네스를 풀어주자 녀석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나는 녀석을 번쩍 들어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미지근한 비눗물로 발과 엉덩이를 씻어주었다. 수건으로 닦아주고 드라이어로 쐬었더니 질색을 하고 도망친다.


마루를 데리고 오기 전에 유튜브에서 강아지 훈련 영상을 정주행 했었다. 그 기억을 살려 간식으로 하우스 훈련을 시키고 앉아와 기다려를 연습시켰다. 녀석은 사료를 먹고 물도 먹고 여전히 나를 경계하면서도 따라다니고 틈만 나면 잠을 잔다. 오후에는 다시 한번 산책을 나갔다. 아침보다는 좀 멀리, 근처 하천 가를 걸었다.

계속 마루라고 부르고 불렀을 때 반응하면 간식을 줬지만 아직은 이름을 모르는 눈치다.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했다. 드라이어로 말려주려니까 쫄딱 젖어 추워하면서도 도망쳐버린다. 제 집으로 들어가 안 나온다. 사료를 줬더니 겨우 나왔는데 나를 무척 경계하면서 사료를 먹는다. 목욕 다 해서 깨끗한데 사료가 얼굴에 묻어서 닦아주려고 했더니 으르렁 거린다. 나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수의사 선생님께 카톡으로

'선생님, 마루가 으르렁 거렸어요.'

했더니

'언제 그랬는지 설명해 보세요.'

하신다. 밥 먹을 때 얼굴 닦아주려고 했었다는 말에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마세요. 싫어해요.' 하신다. 아하. 그래서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라고 했나 보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녀석이 냉큼 소파에 올라와 내 무릎에 얼굴을 얹고 애교를 부린다. 쌀쌀한 듯 냉정하다가도 내게 체온을 나눠주는 녀석, 어쩐지 정이 간다. 나도 아직은 어색한 손길로 마루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언니, 마루 어때?"

동생이 이번에는 카톡으로 마루의 사진을 요구한다. 사진을 보내줬더니

"아직은 언니 눈치를 보는 얼굴인데. 어제보다는 표정이 낫네."

한다.

"나 잘 키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내 말에 동생은 전과 다른 위로를 해주었다.

"언니, 강아지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키울 때 힘들지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준대. 언니도 마루랑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정도 주고 잘 지내봐."

하긴. 그동안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올까 했던 녀석들도 꽤 있었고 견주님들이 데려가라는 강아지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조건이 맞고 선뜻 마음이 가는 아이는 마루였다.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것일까.

인연이라는 말, 참 좋다. 마루와 나, 마루와 내 인연이라는 말도 좋다. 그리고 마루와 함께 하는 둘째 날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