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매듭
— 왜 나는 같은 사람을 다른 얼굴로 다시 만나는가
나는 몇 번이나 다른 이름의 같은 사람을 사랑해 왔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같은 말로 몇 번이나 다른 이름의 같은 사람을 증오해 왔다.
사람은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같은 사람을 여러 번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이름도 달랐고, 말투도, 자라온 환경도, 직업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내 마음 안에서는 늘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설명하기 어려운 익숙함, 이유 없이 먼저 찾아오는 피로, 그리고 결국 같은 결론으로 흘러가는 관계의 끝.
나는 몇 번이나 다른 이름의 같은 사람을 사랑해 왔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사람은 다 다르고, 관계는 늘 새롭다고 믿고 싶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이 사람만은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사랑을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주 작은 순간에, 내 마음이 먼저 알아차렸다.
그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갈등을 피하는 방식, 책임을 미루는 태도, 필요할 때만 가까워지는 거리감. 그 순간 나는 조용히 깨달았다.
아, 또 여기구나.
또 이 자리구나.
관계의 매듭은 그렇게 조용히 조여 왔다.
묵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 매듭을 처음 만난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이미 만져본 감촉이었다. 그래서 더 쉽게 손을 뻗었고, 그래서 더 오래 붙잡고 있었다.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에는 다르게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마치 주님 없이 혼자서만 같은 기도를 반복하며, 이번엔 응답이 달라질 거라 기대하는 사람처럼.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하필 이런 사람들인가.
왜 나는 늘 비슷한 유형에게 마음을 여는가.
그러나 오래 기도하며 돌아보니, 답은 늘 관계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연히 만난 존재라기보다, 내가 마련한 무대 위에 올라온 배우들에 가까웠다. 대사는 달랐지만, 역할은 같았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같은 관객이자, 같은 연출가였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느냐보다, 내가 그 관계 안에서 어떤 자리를 고집해 왔는지가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관계 속에서 자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설명을 대신해 주고, 변명을 만들어 주고,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을 믿어 주었다. 상대가 나를 충분히 선택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반쯤 선택을 끝낸 채 기다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견디는 데 익숙했고, 불편함을 말하기보다 참는 쪽이 더 신앙적인 태도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같았다.
나만 애쓰는 구조, 말하지 않은 불만이 쌓이는 시간,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허무.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을 사랑했다기보다, 관계 안에서의 ‘나’를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감각, 이해받지 못해도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남는 자리, 쉽게 떠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그것들은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내가 풀지 못한 매듭이었고,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한 불안이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말은 반만 맞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같은 방식으로 사랑했고,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았으며, 같은 방식으로 끝을 맺었다. 상대는 달랐지만, 관계의 구조는 늘 같았다. 그리고 그 구조를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이 깨달음은 아팠다. 누군가를 탓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명도 아니고, 상대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아직 내려놓지 못한 매듭이, 다른 얼굴을 쓰고 다시 찾아왔을 뿐이었다.
풀지 않으면 반복된다는 단순한 진리가, 관계 안에서는 유독 잔인하게 드러났다.
그렇다고 이 깨달음이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매듭은 인식했다고 해서 바로 풀리지 않는다. 어떤 매듭은 너무 오래 묶여 있어서, 어디서부터 실이 시작되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무리하게 당기면 더 단단해지고, 억지로 풀려 하면 오히려 끊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매듭을 풀기보다, 먼저 하느님 앞에 올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 내가 또 이 자리로 오고 있구나.
아, 내가 또 나를 이 위치에 두려 하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조금 달라진다. 예전처럼 무작정 뛰어들지 않게 되고, 익숙한 패턴이 보이면 잠시 멈춰 기도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주문 대신
‘주님, 나는 지금 무엇을 반복하려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익숙한 얼굴에 마음이 흔들리고, 비슷한 온도의 말에 안도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익숙함이 반드시 사랑은 아니며, 반복이 곧 부르심은 아니라는 것을.
관계의 매듭은 한 사람을 바꾼다고 풀리지 않는다. 나를 바꾸겠다고 다짐한다고 해서 바로 느슨해지지도 않는다. 다만, 이 매듭을 ‘운명’이나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하느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는 내 마음의 자리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그 실은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요즘 그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정말로, 다른 얼굴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그때의 나는, 사랑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기다리기보다 선택하고, 이해하기보다 진실을 말하고, 견디기보다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사람.
아직은 그 연습 중에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 매듭을 풀 열쇠는 언제나 내 손안에 있었고,
그 손을 주님께 내어드릴 때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