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용서,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장면들

by 영인


― 나 자신을 포함해서


끝내지 못한 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름을 바꾸고, 모양을 바꾸어 내 안에 남는다. 말하지 못한 사과는 습관적인 침묵이 되고, 정리하지 못한 관계는 이유 없는 죄책감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것들이 과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매번 현재의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들 속에서, 가장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신앙 안에서 용서는 종종 잊는 일로 오해된다.


하느님은 기억을 지우지 않으신다. 대신, 기억의 의미를 바꾸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죽음의 증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 끝까지 갔다는 표식이었다. 끝내지 못한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아직 하느님의 손에 놓이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다.
나는 과거의 선택 앞에서 자주 스스로를 심문한다. 왜 그때 그렇게 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끝내지 못하고 돌아섰는지를. 그러나 하느님은 그 자리에서 나를 피고로 세우지 않으신다. 오히려 함께 서서 묻는다. “그때의 너는 무엇을 견딜 수 없었느냐”고. 용서는 판단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자리에 머무는 일임을 그분은 아신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장면들은 나를 벌하기 위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사랑하려 애썼다는 증거다. 하느님은 미완의 나를 완성된 기준으로 재지 않으신다. 그분은 내가 멈춘 자리에서도 계속 나를 부르신다. “이제 나와 함께 다시 보자”고.


오늘 나는 용서를 선택하려 한다. 다른 누군가보다 먼저, 끝내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해. 기억을 지우려 애쓰지 않고, 그 기억을 하느님의 자비 안에 건네며. 주님, 제가 도망치듯 남겨둔 장면들까지도 당신께 드릴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그 장면들이 더 이상 저를 묶는 사슬이 아니라, 자비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게 하소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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