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결과를 원한다는 것
― 아직 자라고 있는 나를 재촉할 때
나는 자주 열매를 먼저 확인하려는 사람이다. 씨앗을 심고도 흙을 파헤쳐 싹이 트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아직 자라고 있는 나를 향해 채찍을 든다. 더 잘하지 못했다고, 아직 부족하다고, 왜 이만큼밖에 못 왔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 속에서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충분히 살아낸 존재로 인정해준 적이 없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성장은 언제나 숨겨진 시간을 필요로 한다. 씨앗은 땅속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 동안 아무도 그것을 유능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싹이 트기 전의 시간을 실패로 보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시간을 견디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신다. 내가 스스로를 재촉할수록, 나는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라 세상의 속도로 나를 재단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주 기다리신다. 당장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때로는 침묵하시고, 때로는 다른 길로 돌아가신다. 그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급한 결과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결과보다 관계를, 완성보다 성숙을 먼저 보신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묻는다. “언제쯤이면 괜찮아질까요?”
“충분히 하고 있다”는 말은 나태의 변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에 가까워지는 연습이다. 지금의 나를 긍휼히 바라보지 못한다면, 나는 끝내 어떤 결과 앞에서도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자라고 있는 것을 자라지 않았다고 꾸짖는 일은, 하느님이 시작하신 일을 내가 중단시키는 일과도 닮아 있다.
오늘 나는 서두르지 않는 용기를 배우려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오늘의 성장을 오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주님, 제가 저 자신에게 해주지 못한 그 한마디를, 당신의 목소리로 듣게 하소서.
“너는 이미 충분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