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1938년을 쓰는가

by 영인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하필 1938년인가. 왜 지금이 아닌가. 왜 이렇게 멀고 불편한 시간을 붙들고 있는가.

처음부터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들은 현재의 언어로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또렷한 설명, 너무 빠른 판단, 너무 쉬운 결론이 먼저 와버리면, 그 이야기들은 입을 닫았다. 그래서 나는 한 걸음 물러난 시간, 말이 느리고 기록이 불완전한 시대로 갔다.

1938년은 애매한 해다. 전쟁의 한가운데도 아니고, 평화라고 부르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무너진 뒤다.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지만, 동시에 사라지고 있었다. 이름 없이, 기록 없이, 혹은 기록되었으되 지워질 것을 전제로. 나는 그 애매함이 좋았다. 명확하지 않아서, 그래서 함부로 판단할 수 없어서.

이상하게도 내가 쓰고 싶은 인물들은 늘 설명을 거부했다. 선한지 악한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용기 있는지 비겁한지.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고, 말해지지 않은 사람들. 그런 인물들을 현재로 데려오면, 독자는 너무 쉽게 편을 가른다.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1938년에는 아직 “말하지 않음”이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침묵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었고, 숨김은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선택했고, 그 선택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시대로 돌아가, 기록되지 않은 선택들을 상상한다.

가끔은 이게 도피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의 문제를 직접 말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먼 시간을 택한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쓰면 쓸수록 확신이 생긴다.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돌아간 것이다. 우리가 너무 빨리 잊어버린 감정의 속도로.

1938년에는 컴퓨터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저장 버튼도 없다. 남는 것은 종이와 기억, 그리고 소문뿐이다. 한 번 흘러가면 다시 확인할 수 없는 말들. 그래서 그 시대의 이야기에는 늘 불안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불안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아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1938년을 쓰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 시간대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른 시간에서는 쓰일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미 사라진 해의 문턱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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