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생기는 두려움이 있다.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았는데, 이미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문서의 하얀 화면, 비어 있는 첫 줄은 언제나 나를 시험한다. 이 시험에는 문제도, 정답도 없다. 다만 “정말 시작할 수 있느냐”는 질문만 반복된다. 이상하게도 나는 늘 그 질문 앞에서 멈춘다. 이야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두려움은 이미 완성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이번에도 알지?”라고 말하듯, 너무 익숙한 표정으로.
이 두려움은 글의 완성도에 대한 공포와는 조금 다르다. 못 쓰게 될까 봐 무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쓰는 순간,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 봐 두렵다.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감정, 정리되지 않은 기억,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생각들을 불러내는 일이다. 쓰기 전의 나는 아직 안전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종종 시작하지 않는 선택을 신중함이나 준비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준비가 아니라, 유예에 가깝다.
이야기는 언제나 쓰기 전부터 나를 멈추게 한다. 이상하게도 생각 속에서는 이미 수없이 썼다. 문장도 떠올랐고, 장면도 완성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머릿속의 문장은 실제 문장이 되는 순간 너무 초라해 보이고, 그 차이를 견디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자주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나 자신에게 건넨다. 더 읽고, 더 생각하고, 더 정리한 다음에 쓰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미뤄진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잘 쓰는 것보다 쓰기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매번 새롭게 배운다. 잘 쓰는 일은 시간과 수정을 허락한다. 문장은 고칠 수 있고, 구조는 다시 짤 수 있다. 그러나 쓰기 시작하는 일에는 대체가 없다. 첫 문장은 오직 한 번만 처음이 될 수 있고, 그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완벽함을 포기해야 한다. 시작한다는 것은 이 글이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미리 껴안는 일이다. 그래서 시작은 늘 용기라기보다 체념에 가깝다. 더 미루는 쪽이 오히려 더 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겨우 한 줄을 쓴다.
이 두려움은 매번 같은 얼굴로 돌아온다. 다른 이야기, 다른 주제, 다른 시기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어느 정도 썼다고 믿었던 때에도, 출간을 앞둔 순간에도, 두려움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이 두려움은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쓰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아무 의미 없는 글 앞에서는 이런 두려움도 나타나지 않는다. 두려움은 언제나, 중요한 이야기의 입구에 서 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이 두려움을 나의 결함처럼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술술 쓰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매번 이렇게 오래 멈춰 있는지 자책한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지면, 나는 쓰는 행위 자체보다 ‘쓰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 어려운 사람이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문장은 나를 대신해 서게 되고, 그 문장이 부끄럽거나 초라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시작은 늘 나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요즘의 나는 이 두려움을 없애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아, 또 왔구나” 하고 알아본다. 같은 얼굴로 돌아온 두려움에게, 이번에도 자리를 내어준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두려움이 자리를 차지한 채로도 나는 한 문장을 쓴다는 것이다. 잘 쓰겠다는 다짐 대신, 쓰겠다는 약속만 남긴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용기가 충분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핑계로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나에게 글쓰기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걸어가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매번 같은 얼굴로 돌아오는 그 감정을 알아보고도, 여전히 쓰기를 선택하는 일.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일수록, 나는 조금씩 알게 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생기는 두려움은, 나를 멈추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직 쓰고 싶은 사람이란 증거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두려움을 앞에 두고, 다시 첫 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