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쓰는가

by 영인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쓰는가.
이 질문을 처음 품었을 때, 나는 그걸 습관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버릇, 혹은 게으름. 한 번 완성한 장면을 또 꺼내는 건 새로움을 피하는 일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반복은 내가 회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끝내 놓치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이야기는 마치 같은 장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처럼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이전과는 다른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얼굴도 성격도 시대도 조금씩 다르고, 살아온 배경까지 바꿔 놓았는데도 이상하게 같은 장면으로 모인다. 어떤 인물은 비 오는 밤에 문 앞에 서 있고, 어떤 인물은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끝내 만나지 못한다. 어떤 인물은 떠나간 사람을 돌아보지 못한 채 등을 보이고, 어떤 인물은 같은 말의 끝에서 입술만 달싹인다. 그 장면들은 서로 다른 소설의 일부이면서도, 어딘가에서 하나의 장면처럼 겹쳐 보인다. 마치 내가 다른 이름을 붙여주며 “이번엔 다르게 해볼게”라고 말했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그게 불안했다. 내가 가진 이야기가 고작 이것뿐인 건 아닐까. 내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닐까. 이미 쓴 장면을 조금 다르게 포장해서 다시 내놓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세상은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작가는 매번 다른 세계를 제시해야 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같은 골목으로 돌아가고, 같은 문 앞에서 발을 멈춘다. 그 반복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나는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상상력이 닳아버린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손목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장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그 안에는 이상한 정직함이 있었다. 반복은 대충 쓰는 사람의 흔적이라기보다, 계속해서 뭔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의 자세에 가까웠다. 같은 질문을 다시 묻는 아이처럼. 중요한 질문일수록 사람은 한 번에 답하지 못한다. 한 번의 답은 보통 너무 단순하고, 너무 빨리 끝나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가고, 다시 묻고, 같은 문장을 다른 마음으로 꺼내며 조금 더 가까운 진실을 찾아간다.

반복은 그래서 질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끝내 말하지 못한 지점이 있어서, 그것이 나를 계속 불러낸다. 마치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아직 아니야, 그게 전부가 아니야”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한 번 썼다고 해서 다 말해진 것이 아닌 감정들이 있다. 결론을 낸 것 같았는데도 가슴 한구석이 계속 뜨거운 채로 남아 있는 일들이 있다. 나는 그 잔열을 견디지 못하고 또 다시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의 입을 빌려, 같은 장면을 한 번 더 열어 본다.

어쩌면 이건 기억의 방식과도 닮아 있다. 기억은 한 번 떠올렸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떠올릴 때마다 새로 편집된다. 같은 사건을 생각해도 그날의 내 컨디션, 최근에 겪은 일, 내 나이와 내 상처의 모양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그때는 그렇게 느꼈는데,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고 말한다. 소설 속 반복도 비슷하다. 그 장면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는 계속 바뀐다. 인물을 바꾸고 배경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는 건 사실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은 내 마음의 변주다.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확인하는 일.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증거.


나는 종종 ‘끝내 말하지 못한 지점’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말하지 못한 지점이라는 건 꼭 비밀이라서가 아니다. 감정이 너무 커서 문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혹은 말해버리면 깨질 것 같아서, 너무 구체적인 언어로 다 붙잡아버리면 어떤 여백이 사라질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던 경우도 있다. 말하지 못한 지점은 늘 완성되지 않은 것이고, 완성되지 않았기에 계속 나를 부른다.

그리고 그 지점이 내 글쓰기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어떤 작가는 거대한 사건을 쓰고, 어떤 작가는 세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딱 한 장면을 계속 다시 쓴다. 나는 그 쪽에 더 가깝다. 내 안의 어떤 고장난 문이 한 번 닫히지 않아 계속 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나는 그 틈을 문장으로 덮으려 한다. 덮는다고 바람이 멎는 건 아니다. 다만 바람의 방향을 알게 되고, 바람이 들어오는 이유를 알아차리게 될 뿐이다.

가끔은 반복이 나를 보호한다는 생각도 든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늘 위험하다. 아무런 지도가 없는 숲에 들어가는 기분이니까. 반면 익숙한 장면은 내가 길을 잃지 않게 해준다. 나는 그 장면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대강 알고 있고, 어떤 감정이 나를 기다리는지도 안다. 그러니 그곳으로 돌아가는 건 안전을 선택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전함은 내가 계속 그 장면을 통과하려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겁이 나서 돌아가지만, 겁이 나서 도망치지는 않는다. 나는 반복으로 돌아가면서도 결국 그 장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같은 장면이지만 그 장면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울지 않던 인물이 이번에는 울어버리고, 예전에는 떠나던 사람이 이번에는 돌아오기도 한다. 어떤 인물은 말끝을 삼키지만 어떤 인물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한다. 이 작은 차이가 중요하다. 그 작은 차이를 통해 나는 내가 달라졌음을 확인한다. 나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들고 있지만, 그 질문을 다루는 손의 힘이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상처를 피하려고 돌려 말하던 내가, 어느 날은 그것을 더 정확한 단어로 짚기도 한다. 예전에는 멋있게 포장하던 감정을, 어느 날은 그냥 “외로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복은 그 변화가 쌓이는 자리다.

그래서 나는 이제 반복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반복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집요함의 증거다. 어떤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의 성실함. 나는 하나의 장면을 통해 계속해서 나 자신을 확인하고,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내 작품의 색이 된다. 반복되는 장면은 내가 가진 고유한 무늬다. 같은 무늬를 가진 천도 매번 다른 옷이 될 수 있다. 다른 계절에, 다른 사람에게, 다른 체온으로 닿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무늬가 아니라 그 무늬가 놓이는 방식이다.

나는 아직도 끝내 말하지 못한 지점에 대해 완벽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그 지점은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 안에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감정이 나를 쓰게 하고,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앉힌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인물을 불러, 같은 장면의 문을 열어젖힌다. 이번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번엔 조금 더 솔직해지기 위해.

어쩌면 나는 완벽한 결론을 쓰기 위해 반복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결론이 아니라, 이해를 얻기 위해. 이해는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이해는 대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아주 작은 만큼만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같은 이야기를 다시 쓴다. 그건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나의 질문이 계속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다른 이름의 인물들이 같은 장면으로 모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장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내 말하지 못한 지점이 아직 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부름을 따라가며, 같은 문장을 조금씩 다르게 놓는다. 조금씩 더 나다운 방식으로, 조금씩 더 정확한 마음으로.

반복은 나를 갉아먹는 습관이 아니라,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다.
나는 그 반복 속에서, 결국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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