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기로 한 선택

by 영인


이야기를 쓰다 보면 손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이 문장을 더 써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부분은 그 멈춤 앞에서 설명을 덧붙인다. 독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빈틈없이 이해하도록, 혹시라도 놓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 역시 오래도록 그렇게 써왔다. 설명은 친절이었고, 책임이었고, 작가로서의 성실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이해시키려는 바로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설명은 독자를 안전한 자리로 데려다준다.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행동했고,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며, 감정의 결론은 어디쯤인지 분명히 알려준다.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이해의 끝에는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음에 오래 남지 않고, 몸에 스며들지도 않는다. 잘 알았다는 감각만 남고, 기억은 빠르게 식는다.


나는 질문했다.
과연 이야기는 이해되어야만 하는 걸까.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남는 것이 꼭 ‘아, 그렇구나’여야 할까. 어떤 문장은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설명할 수 없어서 자꾸 되돌아가게 되고, 말로 붙잡히지 않아서 마음속 어딘가에 걸린 채 살아남는다. 나는 그런 문장에 더 오래 머무는 독자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런 문장을 쓰고 싶어졌다.


설명은 작가의 말이지만, 여백은 독자의 시간이다.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독자가 개입할 자리는 줄어든다. 해석은 닫히고, 감정은 정리된다. 작가는 안전해지지만, 독자는 관객으로 물러난다. 반대로 설명을 멈추면, 불안이 시작된다. 이 장면을 이렇게 이해해도 되는지, 이 인물을 미워해도 되는지,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 질문이 생기는 순간, 이야기는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나는 설명 대신 여백을 남기기로 했다.
말하지 않은 이유, 쓰지 않은 장면, 닫지 않은 결말. 그것들은 게으름이 아니라 선택이다. 모든 것을 밝혀놓지 않겠다는 선택, 독자를 믿겠다는 선택이다. 독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읽어낸다. 문장 사이의 숨, 말끝에 걸린 망설임, 굳이 설명하지 않은 침묵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물론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이해받지 못할까 봐, 불친절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너무 어렵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망설였다. 설명을 하면 그 두려움은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중심도 함께 사라진다. 모든 것을 이해시킨 이야기는 더 이상 독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완결된 세계는 닫힌 채로 존재할 뿐이다.

여백은 미완이 아니라 초대다.


독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 경험을 들고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 여백에 슬픔을 놓고, 누군가는 분노를,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채워 넣을 것이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서로 다른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이야기는 살아 움직인다.

나는 이제 이야기를 끝낼 때 일부러 멈춘다.
더 쓸 수 있지만 쓰지 않고, 설명할 수 있지만 삼킨다. 그 침묵이 불안하더라도, 그 빈자리가 흔들리더라도 그대로 둔다. 독자가 그 자리를 지나가며 발걸음을 늦추기를, 잠시 서서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오래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란다.

이야기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다.
설명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여백은 마주치게 한다. 독자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에 다가올 때 비로소 문장은 각자의 삶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 순간, 작가는 한 발 물러나도 된다.

설명하지 않기로 한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신뢰다.
이야기를 끝까지 이해시키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독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믿음이다. 나는 이제 그 믿음 위에서 쓴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서 말을 걸어오기를 바라면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남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 여백이, 온전히 독자의 몫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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