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자전거를 사 온 것은, 햇빛이 쌀뜨물처럼 옅게 번져 보이던 날이었다. 밝기는 한데, 배를 채우는 빛은 아니었다. 눈앞이 환할수록 속은 더 비어 보였다.
우리 집 대문은 늘 반쯤만 열려 있었다. 닫아버리면 숨이 막히고, 활짝 열어두면 가난이 들킨다. 반쯤 열린 틈은, 우리가 버티는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그날도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눈이 멀어가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머니는 마당을 바라보는 대신, 마당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골목을 스치는 바람 소리, 이웃집 양은냄비가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 발뒤꿈치가 튀기는 소리. 세상은 그렇게 소리로만 지나갔다. 나는 문지방에 앉아 손바닥을 폈다. 손바닥엔 굳은살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배야.”
나는 대답 대신 어머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든, 요즘은 끝까지 듣는 게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졌고, 내 속은 늘 비어 있었다. 어머니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마당을 향해 턱을 아주 조금 들었다.
“밖에… 뭘 세워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마당 한가운데, 우리 집에는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서 있었다.
자전거였다.
낡은 자전거였다. 손잡이 고무는 닳아 있었고 안장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그런데도 쇠살은 이상하게 반듯했고, 바퀴는 먼지 없이 깨끗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내 눈이 틀린 줄 알았다. 우리 집 마당이 아니라, 남의 집 마당을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자전거를 보자마자, 이상하게도 형배가 떠올랐다.
자전거와 형배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내 머릿속에서 둘은 한 덩어리처럼 붙어 있었다. 아마 자전거가 ‘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길이 생기면, 사람은 꼭 누군가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믿는다.
형배를 보낸 날도, 하늘은 이렇게 어정쩡하게 밝았다.
고모가 찾아왔고,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고모는 형배 손목을 잡고 마당을 나섰다. 형배는 내 뒤로 숨었다. 나는 형배를 뒤로 숨겨주고 싶었는데, 내 손은 자꾸 앞으로 나갔다. 형배를 숨기는 손이 아니라, 형배를 내밀고 있었다..
우리는 동네 입구까지 같이 걸어갔다.
길은 짧았는데, 그날은 길이 길었다. 사람들 눈이 우리를 따라왔다. 가난한 집이 아이를 내보낼 때는, 그게 동네 구경거리가 된다.
형배는 계속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집이 있었고, 어머니가 누워 있을 방이 있었다. 형배는 그 방향을 자꾸 보았다. 누가 손을 흔들어줄 것처럼. 누가 “가지 마”라고 말해줄 것처럼.
형배가 울면서 말했다.
“형아, 나도 같이 살고 싶어.”
그 말에 나는 목이 막혔다.
고모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배의 울음이 내 쪽으로 쏟아졌고, 나는 그걸 받지 못했다. 나는 아이였고, 먹고 살 길이 없었고, 어머니 눈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내 어깨 위에 한꺼번에 올라와서, 나는 형배를 붙잡을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못난 말을 골라 뱉었다.
“너는… 많이 먹잖아.”
말이 입 밖으로 나가고 나서, 나는 그 말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가난이 내 입을 빌려 한 말이었다. 그래도 그 말을 한 건 나였다.
형배는 울음을 뚝 멈췄다.
울음이 멈춘 다음의 표정은, 울 때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형배는 내 손을 한 번 잡았다가, 천천히 놓았다. 손을 놓을 때 형배 손끝이 조금 떨렸다. 떨리는 손끝이 내 손바닥에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고모가 형배를 끌고 갔다. 형배는 끌려가면서도 한 번만 더 돌아봤다. 그 눈이 나를 보지 않고, 내 뒤의 집을 보았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적어도 하루 세 끼를 상상할 수 있었다. 밥이 늘 넉넉하진 않았지만, 아침에 솥뚜껑을 열면 김이 올라왔고 저녁에는 남은 국물이든, 묽은 죽이든 무언가가 식탁에 놓였다. 그게 우리 집의 평범함이었다. 나는 그 평범함이 영원할 줄 알았다. 밥은 늘 거기 있고, 어머니는 늘 부엌에 있고, 아버지는 늦게라도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만주로 떠난 뒤, 하루는 눈에 띄게 짧아졌다. 아침을 먹으면 저녁이 바로 와버리는 것 같았다. 두 끼도 빠듯해졌다. 밥상에 놓이는 그릇 수는 그대로인데, 그 안의 내용은 자꾸 줄었다. 쌀은 얇아지고 물은 많아졌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웃는 척했지만, 웃을 때마다 입술 끝이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모른 척했다. 모른 척해야 하루가 넘어갔다.
어머니가 병을 얻고부터는, 끼니라는 말이 점점 의미를 잃었다. 어느 날은 아예 아무것도 못 먹었다. 배가 고픈 건 늘 있었지만, 더 무서운 건 배고픔이 습관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빈속으로 버티는 법을 몸이 먼저 배워버리면, 사람은 뭘 포기해도 되는 존재가 된다. 어머니는 점점 더 자주 누워 있었고, 일어나 앉아도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실수인 줄 알았다. 그릇을 찾지 못해 바닥을 만지고, 문지방을 한 번 더 밟고, 내 얼굴을 확인하듯 손끝으로 더듬는 것들이. 하지만 그런 날이 쌓이자 나는 알게 됐다. 어머니의 두 눈은 ‘피곤해서’ 흐려지는 게 아니었다. 사라지고 있었다.
빛이 들어오는 낮에도 어머니는 방 안이 어둡다고 말했다. 나는 창문을 더 열어주고, 불을 켜고, 어머니 얼굴 가까이 서서 말해보았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지만, 나를 향해 정확히 웃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를 도울 때마다 숨을 조심했다. 내 숨소리가 어머니를 더 불안하게 만들까 봐, 내 움직임이 어머니를 더 작게 만들까 봐.
그래서 나는 집에서 놀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삶이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시장으로, 시내 길거리로,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걸어 다녔다. 혹시라도 돈이 되는 일이 있을까 싶어 눈을 굴렸다. 짐을 들어주는 일, 심부름, 물건 나르는 일, 누군가 “얘야” 하고 부르면 재빨리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내가 지키는 것이 밥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사실을 너무 똑똑히 알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근처 소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떼로 지나가면, 나는 애써 못 본척 고개를 숙였다. 어떤 날은 누군가 먹다 버린 걸 보고도 손을 뻗지 못했다. 배가 아니라 얼굴이 먼저 붉어져서였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지 못하면서도,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만으로 내가 돌아온 걸 알았다. 내 목소리를 들을때면 어머니가 웃었다. 작은 미소 하나 때문에, 나는 내일도 다시 길 위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오늘, 어머니가 자전거를 사왔다.
“교회에서… 돈이 좀 들어왔다. 아버지 일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이 먼저 차가워졌다.
그 돈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돈은 약값이었다. 어머니의 눈을 하루라도 더 붙잡아 두는 값이었다.
“그럼 약은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잠깐 침묵했다. 그 침묵은 고집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약은…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은 우리 집에서 자주 쓰였고, 자주 거짓말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마지막에 한마디를 더 했다. 그 말의 끝이 흐려져 분명히 들리진 않았지만, 그 말이 희망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것만은 알았다.
“이걸로… 살아보자.”
나는 자전거 손잡이를 잡았다.
쇠는 차갑지 않았다.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냥—내 손에 맞았다. 마치 내 손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어머니가 말했다.
“타 봐라.”
안장은 생각보다 높았고, 발끝이 땅에 잘 닿지 않았다. 잠깐 겁이 났다. 그래도 나는 발을 올리고 페달을 밟았다.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마당이 갑자기 좁아졌다. 대문이 가까워졌다. 골목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나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신작로까지 나갔다 돌아왔다.
그날부터 나는 자전거로 일을 했다.
짐을 실어 나르고, 장을 봐다 주고, 누가 부르면 어디든 갔다. 전엔 “얘야, 뛰어가서”였던 말이 그날부터는 “얘야, 자전거로”로 바뀌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속도를 빌려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첫째 날에는 죽을 사 왔다.
죽은 비쌌다. 밥에 비해 늘 비쌌다. 그래도 어머니 목을 넘어갈 수 있는 건 죽뿐이었다. 나는 죽을 데워 작은 그릇에 담아 어머니 앞에 놓았다.
어머니는 숟가락을 쥐고 허공을 더듬었다.
나는 어머니 손목을 살짝 잡아 그릇 가장자리에 닿게 했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 하나로 어머니는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어머니는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고 천천히 삼켰다. 목이 움직였다. 그 목 움직임 하나가 내 하루의 값 같았다.
둘째 날에는 쌀을 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