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활짝 열어두는 한 해를 보낼 것을 다짐하면서.
새해를 맞아 북한산 정상에 올랐던 날, ‘이 상쾌함을 다시 바라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의외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산행이라곤 아버지를 따라 동네 뒷산으로 마실 정도 가본 나에게, ‘등산’이라는 건 단어부터가 너무나 본격적인 것이어서 마음에서 미뤄온 도전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고작 백숙 사준다는 말에 언니들을 따라 한 번, 새해니까 산의 정기를 받자고 괜히 또 한 번, 핑계 삼아 가다 보니 대뜸 취미로 삼고 싶어 지다니. 역시 사람 마음이란 여간 간사한 게 아니다 싶었다.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다다랐어도, 오늘 왔던 이 험난한 산길을 또 오르고 싶어 질까 하는 건 좀 다른 문제니까. 분명 내가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볼 때까지 즐거울 걸 알면서도, ‘하고 싶어지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 늘 어렵다. 나의 오랜 취향들을 떠올려 보면, 번개장터를 타고 남의 손으로 가버린 전자 피아노 치기, 어릴 적 보았던 스톱모션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이제는 조금 흥미를 잃어버린 히어로 영화 같은 것들이 있다. 절대 취향이 아닐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좋아지기도 하고, 아꼈던 것들이 더 소중해지기도 하고, 또 내내 사랑할 것만 같았던 것들에 쏟았던 애정이 끝나기도 한다. 나를 스쳐간 것들을 떠올리니 마음의 유통기한이 끝난 것들은 새삼스러워졌고, 아직 눈길을 주지 않은 것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결국 취향이라는 건, 내가 정해둔 경계 밖의 것들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남겨두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겨울이 끝나면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산행을 가봐야지. - 사계절의 산 위에서 맞는 바람이 얼마나 상쾌할지 궁금해져서, 스케줄러 제일 위에 메모를 적어두었다. 내 마음의 틈을 많은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는 한 해를 보낼 것을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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