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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Dec 02. 2021

07. 일기떨기

작가님은 자신을 가리켜 ‘사랑이 천성’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으셨던가?



2021년 11월 23일, 황정은 작가님의 『일기』 출간기념 북토크에 다녀왔다. 『일기』에는 행간마다 작가님이 더해놓은 질문들이 많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산보할 시간이, 장소가 있나요. 거기선 산보, 가능합니까.’ ‘누가 보고 있나요?’ 자문하듯이, 혹은 실체가 있는 대상에게 질문을 건네듯이. 그 질문이라는 것은 대체로 안부나 마음을 살피는 일에 가까워서 이쪽에서 대답하고자 한다면 구체적인 말들을 엮을 동안 저쪽에서 기꺼이 기다려줄 것만 같은, 미지근해질지언정 아주 식어버리지는 않는 다정한 온도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어떤 독서보다도 책을 쓴 저자에게 성실하게 응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다. 전에 없던 독서였다고 해도 맞겠다.


  무대와 객석 간에 다소 거리가 있긴 했어도, 같은 공간 안에 머무는 동안 작가님에게서도 꼭 그런 온도가 느껴졌다. 포근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용기를 내 질문을 드렸다. 지금 작가님 안에는 무슨 질문들이 새로이 더해져 있는지, 그 물음에 어떻게 응답하고 계신지를.


  작가님은 요즘 질문 대신 ‘마음’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신다고 답하셨다. 그러면서 아픈 예를 들어주셨는데,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한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마음의 모습, 마음의 모양에 대해 생각한단다.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좋은 마음이 부족한 사람들. 그런데 이건 세상의 조건인 것 같다고도 덧붙이셨다. 이런 못된 마음들은 어째 점점 더 강화되고, 북적북적 자라나는 것 같다고.


  하지만 작가님은 자신을 가리켜 ‘사랑이 천성’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으셨던가? 이런 세상에서도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럼에도 세상엔 좋은 것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그런 좋은 것들은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것만큼 충분하지는 않지만 없는 셈 치지만 않는다면, 그런 풍경들로부터 눈 돌리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고. 과연. 사랑이 없다면, 밤보다 까만 새벽을 비집고 들어오는 첫 차를 바라보며 애쓰는 모든 존재들의 건강을 바랄 수는 없겠지. 그러고 보면 내가 믿는 마음들을 표현하는 데 점점 더 노력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소중해지기도 하고.


  작가님은 쓰려는 소설 속에서 모든 문장이 부서지고 있을 때 일기를 쓰기 시작하셨단다. 일기만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오늘 작가님과 보낸 시간을 돌이켜보면, 작가님에게 일기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썼던 날, 사랑하며 살아낸 모든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도... 이제 일기떨기 6화 편집하고 오늘의 일기를 쓰고 자야지.



대화 주제     

■ 어떤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의 그 자신의 마음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혜은’이 아니라 ‘혜은이 가진 마음의 모양’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 숙연해지기도 하고 왠지 배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최근에 여러분의 마음을 좋게’ 만들었던 마음의 모양이 있다면 무엇일까그리고요즈음의 내 모습은 타인에게 어떤 마음의 모양처럼 비춰지고 있는 것 같은지 짐작해본다면?   

  

■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자신이 스스로의 삶과 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취미가 독서이기는 하지만, 취향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좋은 책들을 가끔은 의식적으로나마 읽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 여러분의 읽는 취향과 최근에 취향 바깥의 것이지만 읽으려고 애썼던 책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다.     


■ 황정은 작가님은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을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음악 한곡을 여덟 번 열번 반복해 듣는 것이 어떻게 삶을 구할 수 있기까지 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난다.’라는 구절을 쓰셨을 정도. 황정은 작가님의 음악처럼일기떨기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추가로, 이날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읽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어떤 독자의 토로였다. 황정은 작가님은 자신도 같은 마음이라고 답하면서, 지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 된다고, 꼭 모든 일에 같이 울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이었다. 누군가 애쓴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 수 있고, 때로는 책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은 ‘읽기’ 자체가 좋기 때문에 그냥 상처를 받는 쪽을 택한다고 덧붙이면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은 주변에 좀 더 섬세해지려는 노력 같기도 하다이런 독서의 경험이 있는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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