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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Feb 28. 2023

34. 일기떨기

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다시 생활비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급여일인 21일마다 엄마의 입출금 통장으로 30만 원을 송금한다. 이 금액에서 내 이름으로 들어간 실비와 치과 보험을 빼면 집에 보태는 생활비는 채 20만 원이 되지 않는다. 집에서 회사까지 왕복 3시간, 일주일에 꼬박 10시간 이상을 지하철 안에서 보내면서도 자취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바로 돈 때문이다. 서른이 되었지만 내 생활은 학부 시절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작년에만 해도 중소기업 청년대출을 최대한 받고 거기에 내일채움공제와 이전 회사의 퇴직금을 보태서 자취를 할 요량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기에 안 될 것도 없어보였다. 비록 넓지는 않지만 해가 잘 드는 깔끔한 방을 얻어서 내 취향으로 차곡차곡 채워나가야지. 낮에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저녁에는 접이식 토퍼를 깔고 바닥 생활을 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자고 일어날 때마다 이불을 깔고 다시 개키는 일이 번거롭기는 해도 좁은 공간을 활용에 용이하고, 크고 비싼 가구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겠지.     

 분명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내 공간이 생긴 것처럼 오늘의집 집들이부터 유튜브 룸투어까지 새로운 공간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집은커녕 작은 소지품을 구매하는 일조차 망설이게 된다. 갑자기 전에 없는 돈 걱정에 전전긍긍하느라 소비를 줄인 게 아니다. 오히려 작년보다 엥겔지수는 훨씬 더 높아졌다. 내가 부모님과 살지 않는 1인가구라고 생각해도 절대적인 외식 비용이 급증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별다른 고민 없이 먹는 걸 택했다. 2월 한 달 동안은 아귀찜에 푹 빠져서 합정, 일산, 안산, 수원, 저 멀리 목포까지 유명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런데도 나는 매콤한 양념이 잘 밴 통통한 콩나물을 한 젓가락 집으면서 생각했다. 여기가 아무리 매워도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의 자극도 되지 않겠지. 지난주말에는 강화도에 있는 김밥 맛집과 줄 서서 먹는 중국집에 다녀왔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그 비주얼에 압도되어서 먹는 내내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내가 갔던 중국집은 정말 나만 알고 있을 수 없단 사명감에 출근하자마자 옆자리 동료에게 꼭 다녀오라고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다. 이번 주말에 또 가라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맛있는 곳이었다.

 2월에는 먹고 싶은 걸 그 어느 때보다 자주 그것도 잘 챙겨 먹었음에도 음식이 얹힐 때가 많았다. 잘 먹고서 편의점이나 약국으로 가 가스활명수를 찾곤 했다. 친구들에게는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소화 기관이 예전만 못하다고, 이거 참 서러워서 살겠냐고 하소연을 했지만 답답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사실 지금의 답답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돈이 없어서? 소화기관이 예전만 못해서? 이게 바로 친구들이 말하던 인생의 노잼 시기인 걸까. 직장도, 사랑도 이렇게 안정적일 수가 없단 생각이 들면서도 가만히 있을 때면 마음이 너무 공허해서 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2월에는 꽤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3월에는 지금보다 더 고요히, 조용히 가라앉고 싶기만 하다.




화 주제

Q. 인생의 노잼 시기를 보낸 적이 있으신가요?

Q. 뭘 해도 의욕이 안 생길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요?

Q. 3월이 되면 꼭 새해를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2023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Q.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무얼 하며 보내시나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3. 소진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그 사이에는 요가를 하고요.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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