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떨기 Sep 26. 2023

46. 일기떨기

잘 목적지에 도착하겠다는 예상을 감히 해 봐.




작년 추석에 쓴 일기

기억하기로는 중학생 때부터, 나는 종종 실감을 잃어버렸다. 어른이 되면 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직 어른이 안 된 건지 아님 이정도 먹고살기 바쁨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건지 더 자주 실감을 잃어버리는 중이다. 실감은 예고 없이 사라진다. 실감이 사라지면 나는 얼마간 내가 어째서 나인지,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나라는 존재가 돌연 오리무중인 상태에 빠진다. 낯설어진 자신을 낯설어하며 점점 더 멀어져간다. 나와 스스로 거리를 두는 가벼움과 내가 한순간 사라진 것 같은 허탈함은 전혀 다르다. 후자가 지속되는 것은 생각보다 오싹한 일이라, 가능한 한 빨리 달아나야 한다. 다행히 그런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자주 그래야 한다는 사실이 거슬릴 뿐.

최근에도 실감을 잃어버렸다. 또야? 평소보다 망연자실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실감은 왜 자꾸 달아날까. 야속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익숙하게 남아 있는 마음을 챙기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등을 돌려버리면 나는 앞으로도 실감과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것밖에 안 되겠구나. 실감을 잃어버렸을 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는 게 아니라 실감을 되찾는 일이었다. 내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든 없었던 셈 치지 않기, 허탈하고 무섭고 두려운 내 마음을 속이지 않기. 사실 그건 십 수 년 간의 일기 쓰기로 단련돼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도무지 자신을 잃어버리려야 버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실감은 그런 내 사정은 아랑곳 않고 멀리 떠나있었다.

다행히, 실감 좀 잃어버렸다고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사는 게 좀 연극적으로 느껴지긴 한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을 필사적으로 해내는 동시에 완전히 발을 내리지는 못하고 부유하는 기분이랄까. 미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다 싶을 즈음에 친구 D를 오랜만에 만났다. 

D는 같은 과 동기로 시작해 감정적 부침 없이 착실히 우정을 쌓아온 귀한 친구다. D와 나는 D의 집에서 우리 사이에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이야기를 아주 오래 나누었다. 

D와 밀린 근황을 나누다가 A의 이야기가 나왔다. A는 비교적 최근에 나와 인연이 되어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하고 있는 후배였다. D가 어렴풋이 얼굴과 이름만 기억하는 A를 회상하며 말했다. “걔는 나를 기억 못할 텐데, 나는 걔가 처음부터 마음이 가고 좋았어. 눈빛이 예뻤거든. 나도 아주 잊었다가 너 덕분에 생각났네. 잘 지내고 있대? 행복했으면 좋겠다.”  

D가 나와 A의 인연을 거듭 반가워할 때, 나는 D가 A를 향해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말한 것이, 갑자기 샘솟을 수 있는 애정이 반가웠다. 그 말을 하는 D의 얼굴이 너무도 환해서 감격했다. D가 그런 사람이어서 나는 D를 좋아했지. D도 비슷한 이유였을지 모른다. 우리끼리 있을 때 우리 각자가 품은 사랑들은 평소보다 자유로워지니까. 유난한 게 아니고, 과장된 게 아니고, 오롯한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대화는 계속됐다. 낯을 심하게 가려 웬만해선 방문객이 떠날 때까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D의 첫째 반려묘가 기어이 집 밖을 나설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의 말들은 끝날 줄 몰랐다. 대화 사이사이, 사람 좋아하는 둘째를 껴안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다 보니 점점 더 집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

이야기 끝에 D가 불쑥 말했다.

“…그때 너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지만, 꼭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어. 내가 더 늦기 전에 복학하길 얼마나 잘했다고 느꼈는지.” 

맞아 그땐 그랬지. 자기 자신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당장 옆에 있는 친구의 위태로움을 지탱하는 데 더 열심이었지. 그 고마움을 기억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친구인지도 몰랐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숨어버리는 게 아니라, 기꺼이 기대고 그 다음엔 내 기댈 자리를 네게 내어주었으니까. 그 시절에 우리는 우리 덕분에 반드시 괜찮아질 수 있었다. 다시금 안 괜찮아지는 것을 탓하지도 않았다. 이런 시절도 영원하지 않을 걸 알아서, 앞으로는 온전히 혼자서 추스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아주 많다는 것을 짐작이라도 했던 걸까? 특별히 현명하진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데 열심인 우리는, 살아남은 우리가 되었다.

D가 제 살림을 꾸려 사는 모습. D의 살뜰한 냉장고를 보고, D의 고양이들이 자란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가 넘어온 시간이 진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겨우 내가 되네, 라는 자명한 사실이 왠지 더는 실망이나 아쉬움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어렴풋한 해방감과 함께. 나는 비로소 실감이 하나씩 돌아옴을 느꼈다. 나에게 어떤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고 쌓여 있다는 것, 그 궤적을 누군가와 같이 더듬어보니 우연한 해결에 다다라 있었다. 실감은 연약한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툭하면 ‘이걸 다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걸까’,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내게 이제 그만 실감 좀 하라고 말이다. 나를 믿고 사는 것에 대해.

그날 나는 결국 D의 집에서 잤다. 알람보다 일찍 눈을 뜨니 테이블 위에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두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간밤의 이야기를 모두 보고 들은 네 개의 커다란 눈동자, 네 개의 움찔거리는 귀가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두 고양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친구가 깨지 않게 집을 나섰다.

*

  D와 나눈 대화를 녹음해두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이 글을 쓰던 나는 수년 전 D가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 5년 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나에게 보내놓은 D의 메시지’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비공개로 저장돼 있는 게시글이었다. 

네가 잠깐 중요한 걸 놓쳐도 영영 놓치지 않게 함께 해 줄 사람이 있다고,

네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기꺼이 같이 어디든 걸어줄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때로 길은 눈에 보이는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아랫길도 존재한다는 걸.

길을 헤매고 더듬더듬 찾아나가는 과정의 반복일 테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며 결국엔 무사히, 

잘 목적지에 도착하겠다는 예상을 감히 해 봐.




대화 주제     

■ 작년 추석에 쓴 혜은의 일기를 가져와봤어요. 여러분은 기억에 남는 추석, 혹은 명절 일화가 있나요?

■ 친구에게 한 순간 크게 의지한 순간이 있다면 말해보아요.

■ 올해 추석은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매거진의 이전글 45. 일기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