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여행을 왔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게 있어도 잘 물어보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 한다. 당장에 눈앞에 닥친 사소한 일은 물론이 거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우선 해보고서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게 타인에게 무람없이 손을 내미는 일이었는데 그게 좀처럼 되지 않고 있음을 느낀다.
칭다오 공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화물을 찾고 나오니까 이미 새벽 1시였고 호텔까지 가는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택시 어플에 호텔 주소가 나오지 않아서 헤매고 있는데 선민이가 지상직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상황이 갑자기 갑갑하게 느껴졌다. 잘 모른다고 넘기지 않고 계속 무언가 시도하는 여자와 그런 그녀에게 끈질기게 설명을 하는 선민이와 지현이. 이게 맞는 걸까,라고 생각할 때쯤 그녀가 호텔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픽업 서비스를 요청했고, 고마워하는 우리에게 돌아온 답변은
당신들은 여행을 왔잖아요.
어떤 말이 ‘당신’으로 번역된 것일까. 캐리어를 열어 면세점에서 구매한 핸드크림이라도 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그녀는 자신의 소임을 다한 사람처럼 가뿐한 얼굴로 우리를 배웅했다. 그 이후로도 친구들은 때때로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가 가야 할 곳이나 맛집 혹은 관광 명소를 찾았다. 도움받는 기분에 대해서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며 맥주를 마시고 쇼핑몰을 걸어 다니고 서점에서 클래식 공연 영상을 보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가뿐하기를 원하면서 되지도 않는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도 박물관에서 먹는 맥주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셋이서 5만 원이 넘지 않는 식사 말도 안 되게 저렴한 택시비까지. 중국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넉넉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내 통근 시간보다 짧은 비행시간은 나를 조급하게 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데가 한 곳 더 생긴 셈이었다.
중국에 다녀온 이후 가장 많이 한 말은 내가 한국에서 보지 못한 미래가 여기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진다는 거였다. 직장 생활 4년 차, 일의 효율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전에는 특정 프로젝트를 정해진 기한 내에 기왕이면 성과를 거두고 끝마치는 게 중요하다 여겼다. 결과라는 목표를 두고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과의 협업보단 혼자 하는 편이 수월한 순간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 한 명 혹은 키오스크 같은 기계에 의지하려는 시스템을 마주할 때마다 섬찟할 때가 많다. 다수가 효율이라 믿는 것들이 사람을 갉아먹는 순간들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일상을 잠식하고 있기에. 그래서일까. 이 나라의 풍부한 자원, 넘치는 인력이 인상적이었다. 만두를 주문하면 둘이서 만두를 빚고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싶을 때쯤 계산하는 사람, 서빙하는 사람이 들어온다. 테이블이 세 개이고 바 테이블이라고 해봤자 8명 정도 앉을 법한 공간에 여럿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진정한 효율은 옆에 있는 사람이 지치지 않았는지 살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투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여기나 거기나 먹고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겠지만 어딜 가나 아이들이 있고 젊은 사람들이 많고, 일하는 사람이 많고, 푸짐하게 먹고 또 차분하게 차를 마시는 사람들…… 짧은 기간 동안 내 마음에 쏙 드는 장면만 담아 온 거겠지만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50년 뒤 한국은 그려지지 않는데 여기는 그때도 지금처럼 만두 빚는 사람들의 얼굴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나에게는 없고 너에게는 있는, 우리에게는 없고 당신네들에게는 있는 건 무엇일까. 다시 그곳에 가면 어렴풋이 알게 될까?
대화 주제
■ 여행지에서 뜻밖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 친구와의 여행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나요?
ex) 이번에 문어뱅스는 각자 수영, 헬스, 반신욕을 하며 아침을 보냈는데 참 좋더라고요.
■ 일기떨기의 첫 해외여행에 대해서도 와글와글 얘기해 볼까요?
■ 이제 2023년도 열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내년에 가고 싶은 나라 혹은 하고 싶은 여행 테마가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3. 소진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그 사이에는 요가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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