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를 듣고 부르기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
god를 듣고 부르기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고 확신했던 밤.god를 듣고 부르기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고 확신했던 밤.
2023년 11월 13일
언제부터였지. 오랜만에 god 노래 좀 들을까, 하고 보면 <니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1집 7번 트랙)부터 재생되던 게. 제목만 봐도 마치 오래된 덕심에 응답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노래인데, 이번 콘서트를 앞두고 들었을 땐 노래가 나에게 응답하는 순간이 있었다.
별빛을 흩뿌리는 듯한 윈드차임벨로 시작되는 전주. 이윽고 청량한 멜로디와 탱탱볼 같은 비트가 이어지다 삐죽, 첫 소절이 튀어나온다. ‘날, 날 왜 떠나는 거야 날?’ 스무 살도 채 안 된 손호영의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순진하게 묻는 표정이 묻어 있다. 후렴으로 넘어가면 언제까지고 빈 자리를 남겨두겠다는 마음은 역설적이게도 트럼펫 연주에 맞춰 흥겹게 뻗어나간다. 기다림만 남은 화자에게 당장이라도 컨패티가 한 움큼 쏟아질 것 같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이별노래가 아니라 환영송인가 싶을 정도다.
이 노래엔 지나간 모든 처음의 청음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처음이 있다. 한 앨범의 전곡을 참을성 있게 들어본 경험, 익숙한 타이틀곡을 지나 ‘와!’ 하고 감탄한 순간의 기억. 말하자면 첫 최애곡이랄까. 어린 마음에 가사를 다 이해하진 못했어도 이런 노랫말에 이런 멜로디는… 뭔가 신기하다, 그런데 정말 좋다! 하면서 반복했던 노래. 음원이 아닌 실물 음반을 듣던 때였으므로, 주변에 세부 트랙까지 아는 친구들은 없어 혼자만 부르는 아쉬움만큼이나 은근한 고양감을 느끼게 해준 노래.
god를 좋아하며 건너온 시간이 긴 만큼 그들은 내 음악 취향의 근간이 되었다. 뭐든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다고 하는 편이래도 결국 종점에서 한 정거장 더 걷고 싶은 순간에는 명랑하게 미어지는 음악, 청량하되 청량하기만 하지 않은 음악을 재생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 시작에 <니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이 있다. 25년 전, 첫 최애로 우연히 god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취향은 운명처럼 정해진다. 스스로 발굴하거나 가꿔나가는 건 취향보단 교양에 가까운 것 같고.
하지만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없다. 이유없이 곁에 쌓이는 것도 없다. 나의 좋은 면이든 아쉬운 면이든 어쩌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내 자력으로 붙잡아둔 것이 더 많겠지. 그 공식을 음악에 대입한다면 나는 god의 디스코그래피를 착실히 따라온 덕분에 슬픈 이야기를 명랑하게 하는 노래를 편애하게 된 것이다. 슬픔이 오직 슬픔만으로 지속되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진창에서 의아할 정도로 꿋꿋하게 다짐하는 목소리에 많은 날들을 기대면서. 노래는 부르면 부를수록 힘이 세진다는데, 그럼 속은 불안으로 두근거려도 일단 믿기로 했다면 끝까지 믿어보는 고집 같은 것도 내가 오래 듣고 부른 노래로부터 비롯된 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건, 올해 god 콘서트에 가지 않았더라면 1집 7번 트랙을 아무리 많이 들었다한들, 훨씬 나중에야 돌아봤을 이야기. 25주년을 기념하며 god의 ‘마스터피스’를 찾는 공연은 그만큼 특별했다.
그래서 콘서트가 어땠냐고? 스스로 ‘걸작’이라는 말을 쓰는 데 어색함이 없는 시간과 궤적. 그리고 이 모든 공을 팬들에게 돌리는, god 자신들보다는 fangod에게 헌사하고자 마련된 공연이었다. 셋리스트를 총 5부로 나눠, 각 파트마다 멤버들이 도슨트가 되어 god 뮤지엄을 안내하는 구성은 히트송 폭격으로 정신을 놓을만 하면 공연의 컨셉을 상기시켰다. 이전 공연에도 여러 수식이야 붙었지만, ‘마스터피스’라는 주제의 무게 때문인가. 25년 차 아티스트의 자부를—그러나 그걸 소화해내는 방식은 god스럽게, 소탈하고 편안하게—공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충실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태하게 우려 먹어도 지루하지 않은 커리어라고 생각하는데, 아티스트가 무대를 만들고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지나온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새 공연을 올리기까지 팬들의 마음을 얼마나 섬세하게 관찰했는지. 그러니까 이 사랑에 얼마나 성의 있게 응답하는지.
누군가의 층위 앞에서 그것을 셈하는 게 아니라 함께 헤아려보는 마음이 되는 것.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주는 시간이어서 행복했다.
이제는 멤버 모두 개인의 포지션만 고수하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탐구하는 게 보인다. 1+1+1+1+1의 합으로 다섯 명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5인분 몫을 해내서 25주년을 맞이했구나. 한 시절을 나눈 오빠들이 내 근사한 추억저장소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순간, 그렇게 오래된 노래는 계속해서 새로운 무대가 된다.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룹으로 엮이는 시간에 대해서라면 모두 전문가가 되어주는 것이 이 연차의 미덕 같기도 하다.
마스터피스로서의 god가 아닌, god의 마스터피스를 찾아 걸작을 완성하는 것이 미션이었던 공연. 공연의 끝에서 멤버들은 말한다. 이건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우리 오래 서로의 조각으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넨다. 석상 같은 시간은 한 자리에 묻어두게 되지만 조각 쯤이라면, 손에 쥐고 함께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청춘을 점점 과거형으로 대하게 될 텐데, 내가 더욱 내가 되어간다는 감각 만큼이나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이 들 텐데. 이런 시간 속에서라면 나는 언제라도 한 순간 명랑해지겠지.
앵콜의 앵콜 전, 본무대의 마지막 곡은 <길>이었다. 너무 어린 시절의 노래라는 점이 항상 놀랍다. 한참 이 노래를 들었던 때의 나는 물론이고, 그걸 불렀던 god도 너무 어렸다. 그런 의미에서 25주년은 정말 찰나였다는 가뿐함마저 든다. god의 모든 노래 중에 가장 그들다우면서도, 듣는 이로 하여금 god를 잠시 잊게 만드는 노래가 있다면 <길>이 아닐까. 어쩌면 멤버들조차도. 지금 우리는 그저 각자의 삶을 들려주고, 들어주기 위해 모였다고 착각하게 하는 멋진 마무리였다.
그러므로 god를 듣고 부르기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고 확신했던 밤. 돌이킬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내온 것 같지만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어떤 노래를 듣는 시절마다 새로운 마음이 더해진다는 게 꼭 인생을 수정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같다.
대화 주제
■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은 어떤 ‘처음’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우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처음 ‘내 취향이야!’라고 새겨진 노래가 있나요?
■ 처음 보았던 공연은요? (이건 옵션에 따라 답이 달라지겠죠. 처음 스스로 돈을 내고 본 공연, 처음 해외에서 본 공연, 처음 티케팅을 성공한 공연 등등) 공연이든 혹은 영화든 무언가를 관람했던 인상적인 첫 기억을 나눠볼까요?
■ 돌이켜봤을 때, 내 취향을 구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대상이 있나요?
■ 여러분의 한 시절을 의탁하고 있는 노래나 가수가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을 미래의 우리는 어떤 음악과 아티스트에 기대었다고 추억하게 될까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1. 혜은
『아무튼, 아이돌』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썼습니다.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