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리미학 Mar 20. 2021

6. 느지막이 오목대

오목대

오후 늦게 전주에 도착했다.

두 시간을 넘게 쉼 없이 달려와 체크인을 하고 나서야 짐을 풀었다. 방이 따뜻하니 졸음이 금세 몰려왔다. 더 쉬고 싶은 마음에 겉옷도 벗지 않은 채 보일러가 낙낙하게 틀어진 바닥에 앉아 창문으로 이따금 새어 나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짧게 머무는 만큼 더 오래 이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밖에서는 더 이상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 저녁을 먹으러 나갔거나, 저마다의 공간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창밖에 바쁘게 움직이는 차 소리 말고는 주변이 온통 고요해졌다. 그런 탓일까 잠이 쏟아져 하품을 크게 한번 하고는 조금이라도 선잠을 자볼까 싶어 앉은자리에 몸을 뉘었다. 방을 미리 데워준 호스트가 정말 고마웠다. 포근한 공기가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틈에서 잠을 청했다. 아마, 이대로 내일의 아침을 맞아도 좋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서늘한 기운에 눈을 뜨니 이미 창밖으로는 불그스름한 노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이 꺼진 방안은 아직 어두운 상태. 핸드폰을 켜보니 거의 여섯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오랜만의 단잠일까, 낮의 피로했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짐작으로나마 가늠해본다. 차가운 바람이 손끝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패딩을 챙겨 입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파였다.

늦게나마 출발했으니 사람은 별로 없겠구나 하는 마음은 착각에 불과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려 혹시라도 부딪칠 것을 우려하며 피하기에만 급급해졌다. 여러 갈래의 길에서 정신없이 한쪽으로 무작정 들어가니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건물 한쪽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비로소 한옥마을의 흥성거림이 시야에 보인다. 저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전 나처럼 정신없이 인파들을 피해 한산한 곳을 찾으려는 사람들, 친구 혹은 연인과 부러 전주까지 찾아와 어디를 가나 널려있는 가판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내가 간 전주는 지금 생각해도 그렇지만 혼자 방문하기에는 조금 외로운 곳이었다. 흥성거림 안에서 혼자 오롯이 느끼는 고독 혹은 쓸쓸함보다는 친구와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그저 거리를 거닐다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멈춰 걷기도 하고, 문득 멈춘 그곳에서 발견한 가판대의 음식이 마음에 들어 하나 사들고는 둘로 쪼개어 나눠 먹기도 하며, 별것 아닌 것에 까르르 웃기도 하는 그런 느낌이 더 이곳과 어울렸다. 그렇기에 나는 그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조금 쓸쓸해졌을 것이다.


이 내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천천히 잦아들 때쯤 나는 한옥마을 끝자락에 다다랐다. 오목대와 이목대의 이정표가 친절히 그려진 곧게 솟아 뻗어있는 계단을 타고 한걸음 올랐다. 올라가는 내내 원당산 공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같은 시간대에 다른 장소에서 뒷산을 오르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얕게 웃어 보였다. 산책하듯 가만히 계단을 오르고 있으면 나무 틈새로 불빛이 간간이 새어 나온다. 한옥마을의 전경이 사라졌다, 보였다 숨바꼭질을 한다. 내려앉은 밤에 오렌지빛으로 포근히 메워져 있는 한옥마을이 주는 정감이 마음에 들었다.


언덕의 정상은 꽤 널따랗다.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오목대는 이성계가 조선 건국 전, 왜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을 이 누각은 한옥마을을 한눈에 담기라도 하는 양,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자고로 연회는 좋은 것을 보며 즐기는 것이 정해진 법도인 것을. 이미 진즉에 알고 있었나 보다.


오목대는 신발을 벗으면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신발을 한쪽에 벗어두고 올라가 누각을 천천히 살펴본다. 역시나 그저 목조건물일 뿐이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다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이곳이구나 하는 곳에 멈춰 서서 내려다본다. 내가 지나온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어두운 색의 예스러운 지붕들이 겹겹이 도로를 에워싸고 있었다. 순간 조선인가 착각을 해본다. 한복을 차려입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때문일까, 건물마다 천으로 싸여 있는 노란색 혹은 주황색의 등불 때문이었을까 이미 주변의 이질적인 높다란 건물들이 안보인지는 오래였다.


흥겨운 곡조 소리에 맞추어 달을 안주 삼아 야연을 즐기는 모습이 눈앞에 간간이 비친다. 저마다 얼굴에 웃는 빛이 서려 있다. 문득 나무 사이로 내려다본 마을의 등불이 보인다. 말소리는 잦아들고 오래 내려다봐도 좋을 그곳을 바라보며 다시 술 한잔 기울인다. 다시 달이 어슴푸레 뜬다. 문득 취하기 좋은 날이라며 가야금 소리를 듣다 말고 술병을 들고일어나 읊조리는 시조 소리가 저만치서 작게나마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누각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행복한 미소를 띠며 사진을 찍으며 하나씩  추억을 담고 있었다. 나는 누각 아래로 내려가 멀리 떨어진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난다. 오목대를 찍은 사진을 달이 어슴푸레 떴다는 이유 삼아 전송해본다.


역시, 혼자는 너무 외로운 곳이다.

작가의 이전글 5. 오월, 깊은 시간 중력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