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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무도 없는 그 길에 홀로 이

융릉과 건릉

by 느리미학

단술에 취해 오랜만에 포근한 이불에 살을 맞대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혼자'라는 것이 익숙지 않았지만 처음 경험해본 '혼술'은 의외로 즐거웠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이 술 한잔을 기울여 본다. 달고 쓰다. 아마 달다고 느낀 순간부터 몇 잔을 마셨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얼굴에 열이 조금씩 오르자 바깥으로 나가서 차가운 공기에 살을 맞대어 본다. 감기 걸려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딸딸함과 몽롱함이 주는 느낌이 꽤 마음에 들었다. 버스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메모장을 켜 오늘의 느낌을 한자, 한자 적어 내린다. 정리되지 않은 무수한 단어들의 나열. 언젠가 저장해둔 머릿속 기억한 켠에서 나오는 문장을 내리 적다 보니 버스는 숙소 근처 정류장에 다다랐다. 아마 내일이 되면 삭제될 글이겠지만 부러 소중해 잠이 들기 전까지 한참을 들여다본다. 눈이 깜빡, 깜빡 느리게 감긴다. 별안간 무슨 꿈을 꿔도 좋을 포근함에 희미한 의식마저 이내 놓아버린다.


봉고차를 개조한 마을버스를 탔다.

몇몇 사람들과 같은 방향이지만 다른 목적지를 가지고 함께 버스에 올랐다. 좁으나 갖출 건 다 갖춘 버스였다. 심지어 조그마한 벨조차 오밀조밀하게 하나의 어엿한 버스를 이루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아저씨와 기사님의 대화가 내 귀로 이따금 날아들어 온다. 오래 떠들어도 듣기 좋은 이야기들로 버스 안을 가득 메웠다. 가는 내내 그의 말에 간간이 웃기도, 공감하기도 하며 속으로 맞장구도 조심스레 쳐보기도 했다. 하나둘 승객들이 자신의 목적지에 내리고 나 홀로 남았을 무렵 융·건릉에 도착했다.


입구로 들어와 발이 향하는 데로 무작정 걸었다. 조금 걷지 않아 밖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가득 찬 공간이 서서히 드러난다. 빛이 사위어 가기 전 앙상한 나무들의 사잇길로 걷는 내내 겨울의 냄새가 났다. 짙은 초록의 색도, 빛이 바래 노랗거나 불그스름한 색도 마음대로 늘어져 있지만 그사이 정해진 규칙이라도 있는 듯한 폭의 유화를 발라놓은 듯한 공간이기도 했다. 걷는 내내 혼자였다. 말을 거는 이도 없다 싶어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무엇을 생각한다거나, 깊은 고민에 빠진다거나 하는 일 없이 주변이 주는 청명함과 간간이 보이는 쓸쓸함을 느끼며 걷는다. 아마 길을 잃어도 좋겠다. 어디에 다다르든 내가 조우한 풍경들은 모두 내 마음에 담겼을 것이다.


발이 닿는 대로 걸으니 보고자 했던 융릉이 나타났다. 어제 봤던 홍살문이 융릉 앞에 지긋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조의 아들 사도 그리고 사도의 부인 혜경궁 홍 씨가 잠들어 있는 이곳은 꽤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 왕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무덤은 '왕릉'이라 하였으며, 후궁이면서 왕세자의 생모이거나 재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자와 빈의 무덤은 '원', 그 외의 무덤은 죽은 자의 이름과 함께 '묘'라고 부르며 신분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했다고 한다. 사도가 뒤주에 갇혀 죽고 영조는 사도의 무덤을 '수은묘'라고 지어 장례를 치렀지만, 사도의 아들 정조가 즉위한 후 '수은묘'를 수원 화성으로 이장해 '현륭원'이라 명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고종의 명으로 사도를 왕으로 추존해 '현륭원'에서 지금의 '융릉'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세 가지의 이름을 모두 가졌던 사도. 지극히도 아버지를 사랑했던 정조의 효심이 잔뜩 담겨 있는 산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걷는 내내 사도를 떠올렸다.

영화 사도의 끝자락에 나온 영조의 대사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세자의 지휘를 회복하고 그 시호를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세자라 하라'라는 대사가 있다. 아마 걸으며, 멈추며, 마음 한 켠이 조금 아프며, 눈시울이 붉어지며 걸었을 것이다. 사도라는 이름의 뜻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도 이따금 마음 한 켠이 따끔거린다. 공활한 언덕배기 위로 능선을 따라 걸었다. 춥거나, 덥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바람도 이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가만히 불어오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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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마음 또한 그랬을까? 아마 이곳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구슬피 울었을 것이다. 모두가 잠든 밤과 새벽녘 그사이 홀로 나와 긴 한숨을 내쉰 뒤, 가늠도 할 수 없을 만큼 슬픈 얼굴을 하고서 정처 없이 걷다 이곳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온 산짐승도, 깊은 밤 차가운 빛을 가득 품은 달빛조차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을 것이다. 품속에 오래도록 품고 있던 술병을 꺼내어 묘 주변으로 내내 애틋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흩뿌린 뒤, 흙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바닥을 깔고 앉아 오래 참았던 눈물을 뚝뚝 한참 동안 흘렸을 것이다. 그 소리는 아마 숨죽여 지켜보던 노루 혹은 사슴, 그리고 달빛만이 묵묵히 지켜봤을 것이다.


건릉으로 향하는 길도 다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공간이 주는 내음은 어떨까 싶어 내내 듣던 경극의 소리를 줄이고 귀에서 이어폰을 뺀 뒤 흙을 밟으며 정처 없이 걸었다. 발걸음에 힘을 주지 않아도 사박사박 좋은 소리를 내며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따닥' 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의 소리조차 고요히 아름다웠다. 문득 눈이 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햇빛이 비치지 않아도 맑고 청아한 눈이 반짝반짝 빛이 되어줄 것이고, 하얗게 뒤덮인 언덕배기는 아직 누구도 쓰지 않아 새하얀 옷을 입은 것 마냥 포근해 보이는 착각이 일 것이다. 사계절마다 방문해 이 공간을 눈에 담고 싶다. 눈이 내리는 것도, 비가 세차게 내려오는 것도, 낙엽이 부는 사이 홀로 앉아있어도 좋을 듯하다.


영원한 생의 저편에서나마 함께 못다 했던 말들을 전하고 싶어 사도 곁에 묻히길 바란 정조. 그리고 지금 우리네가 융릉과 건릉을 같은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것 또한 지독히 효심 깊은 아들 덕분이겠다. 아마 생의 너머에서는 어린 시절 정조와 젊은 날 사도가 조우해 두런두런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진 않을까.



다음 편(9화)은 내일(4/4, 일요일) 업로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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