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마음

by 세인트

내가 가장 예뻤던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졌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가 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금연을 깨뜨렸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되는 일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요.


김채원의 수필집 '꿈꿀 시간 있으세요?'를 열면 첫 쪽에 이바라기 노리꼬의 시가 있다.

한때 김채원과 지원 자매의 글을 탐닉한 때가 있었다. 나는 젊은 사내였으므로 여성들의 언어가 아름다왔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달랐다. 아니, 같은 것을 보는데도 다른 눈으로 봤다. 나는 여성들이 가진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을 좀 더 섬세하게 보고 싶었다.


군대에서 방송병의 특권으로 매일 밤 ‘김세원의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녹음해 토씨 하나까지 공책에 옮겨 적었다. 3년을 그리하니 어느새 김세원의 말투와 작가인 서남준의 글이 내 몸에 이식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김채원을 필사하면서도 그리 되었으면 하고 소원했다.


“어디에 있었을까, 나의 청춘은? 청춘은 어디에 있었기에 만나지 못하고 헛되이 그림자만 밟았던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린 시절부터 몇 개의, 아니 수없이 많은 문이 내 앞에 가로놓여 있었고,

<나>는 그 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그 문을 열어 그 밖의 세계를 만나는 것은 나였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문을 열고 눈부신 듯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언제나 그 빛은 없어져 버리고 침체된 시간의 흐름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김채원, 꿈꿀 시간 있으세요 21쪽


이 글 속의 ‘시간의 흐름 속에’를 오랫동안 내 음악프로그램의 제목으로 삼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김채원의 글은 다시 읽을 때마다 언제나 ‘내가 가장 예뻤던 때’로 돌아가게 한다. 반드시 그의 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거리, 음악, 웃음과 수다... 같은 추억들과 함께.


돌아보면 내 앞에도 늘 많은 문들이 있었다. 아니, 셀 수도 없이 많았던 문들. 그 문들을 열고 나아가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었지만, 나는 문을 열 때마다 눈부심에 멈추거나, 두려움에 움츠리거나, 거친 바람에 떠밀려 끝까지 지나가지 못했다. 빛은 사라졌고 다시 정지된 시간 속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김채원의 글을 읽고,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암송하면 언제나 ‘가장 예뻤던 때’로 돌아갔다. 그때의 나는

불완전했고, 어리석었고, 외로웠지만, 그래서 오히려 예뻤다.


나는 김채원의 문장을 필사했고, 김세원의 언어를 따라 적으며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싶었다. 드러난 상처 없이도 타인의 고통을 알아채는 마음, 단단함과 여림을 함께 품은 여성적 언어를 내 속에 심고 싶었다. 필사는 그런 바람에 닿을 수 있는 가장 느리고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그러나 청춘 앞에는 언제나 벽이 있었고 그 벽을 넘거나 혹은 부딪쳐 부서질 때마다, 나는 점점 거친 사람이 되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손을 뒤로 숨기듯, 나도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감추기 위해 뾰족한 말을 뱉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김채원의 문장을 읽었다. 그러면 잃었던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서툴렀고 어리석었지만, 그래서 더욱 반짝였던 ‘가장 예뻤던 때’의 나.


이제 나이가 들어 언어와 몸짓이 조심스러워지고 발걸음을 함부로 내딛지 않게 되었지만, 그러면 지금의 나는 그 시절보다 더 예쁜가? 그 질문 앞에 머뭇거린다.


잊고 있던 필사를 다시 시작했다. 더 이상 섬세한 문장이나 품격 있는 언어를 탐하지는 않는다.. 숲, 햇빛, 바람, 파도... 말이 없는 존재들이 건네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언어를 필사한다. 햇빛의 움직임을 베껴 적고, 파도의 호흡을 따라 쓰며, 자연의 침묵을 내 안에 옮겨 적는다. 그렇게 자연을 필사하며 욕망의 무게로 힘들어하던 젊은 날보다 가벼운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새털처럼 가볍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한 점 아쉬움 없이 떠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가 가장 예뻤던 때'는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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