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 제가 찌르다

by 세인트

제 눈 제가 찌르다... 제 무덤을 제가 판다는 말이다. 사서 어리석은 짓을 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천성이 세상살이에 어눌하고 부적응한, 예술가 중에는 이처럼 제 눈을 제가 찌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이디푸스 왕처럼 뭘 잘못해 후회하며 자해하는 게 아니라, 오직 사랑하는 작품을 위해.


고흐가 작품을 위해 스스로 귀를 자른 일은 고흐와 고갱을 고씨네 배다른 형제쯤으로 아는 사람도 아는 얘기고, 조선시대에 최북이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이 양반도 어느 저 양반 한 놈이 감히 예술가인 자신을 함부로 여기자 자존심에 심한 흠집이 생겨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평생을 '캡틴 큐'가 되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자기 손으로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 진정 예술혼 때문인지, 아니면 괴랄맞은 성품을 후세의 호사가들이 미화한 탓인지는 특검에서 증언한 바 없으니 본인밖에 알 수없지만, 미루어보건대, 예술가란 원래 금전적 이익이나 권력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을 위해 제 한 몸 바치는 (권력을 위해 두 번씩이나 제 몸을 바치는 돌연변이도 있었으나 논외로 하자) 피 끓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술, 담배, 섹스로 몸을 망치더라도 그것이 작품을 낳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여기서 예술을 핑계 삼아 술, 담배, 섹스를 업으로 삼는 '예술가 호소인'은 제외하자. 그런 자들은 주로 예술인 단체나 상아탑 주변에 서식하며, 지역에서는 시장이나 군수 옆에 기생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수가 적지 않다.


귀 한쪽 , 눈 하나를 훼손해 예술혼을 지키려던 사람도 도망갈, 아예 자신의 신체를 작품의 재료로 삼는, 예술가도 있다. 마크 퀸이라는 사람은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과 함께 영국 작가 집단인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대표하는 작가가 인데, '생명'을 주제로 인간이 태어나 죽기까지 신체의 변형을 예술적 상상으로 표현한다. 머리가 벗어지거나 게을러 배가 나오는 건 노화지 신체 변형의 예술이 아니니 다른 분야다. 실망이겠지만.


1991년에 발표해 이름을 알린 ‘Self’라는 작품은 자신의 피를 부어 만든 두상으로, 이를 위해 무려 4.5리터나 되는 피를 뽑았다고 한다. 어지럽지도 않은지, 아니면 헌혈차에서 주는 보름달 빵 같은 걸 잘 챙겨 먹었는지, 이후에도 틈만 나면 피를 뽑아 작품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루마니아의 드라큘라 백작도, '매혈기'의 허삼관 선배도 그 앞에서는 "졌다!" 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스테판 사이그마스터라는 작가는 아예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작품을 마스터한다. 팝 가수 루리드의 앨범 'Set the Twilight Reeling'의 포스터는 자신의 얼굴 위에 앨범의 곡목을 가득 적은 사진을 사용하고, 1999년에 발표한 작품 ‘AIGA Lecture Poster’는 칼로 몸을 그어 글자를 새겨 그 상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신의 몸에 남은 상처는 예술가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창작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며. 이처럼 '고통'이 작품의 본질이므로 우리는 그가 몰래 게보린이나 타이레놀을 먹지는 않았을까? 하는 제 수준의 의심을 거두는 것이 작가를 존중하는 태도겠다.


이들보다 더 끔찍한 충격을 주는'제 눈 제가 찌르는' 작가도 있었으니, 세르비아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다.

그녀는 전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다양한 도구와 소품을 주고 자기 몸을 마음대로 하라고 주문했다. 도구도 안 주고, 참가한 남자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도구만 사용하라고 했던 애나벨 청의 퍼포먼스와는 구별해야 한다. (하긴 그 자리의 변태들에게 도구를 안 준 게 얼마나 다행이냐!)


처음에는 망설이던 사람들이 점차 이거 장난 아니네? 싶자, 그녀의 옷을 벗기고, 담배를 물리고, 칼로 찌르고, 쇠사슬로 묶고, 총구를 들이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무생물인 오브제처럼 관객의 시도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끔찍한 퍼포먼스는 무려 6시간 뒤에야 끝이 났다.


이러니 앞으로 예술가들은 어느 지점까지 제 눈 제가 찌르는 행위를 끌고 갈지 한편 두렵기도 하다. 이런 극단적인 표현까지 가지는 않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거나 못하고, 실제 삶에서도 작품의 세계에 빠져 살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예술가로 타고난 사람의 천형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극이 끝나고도 한참을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다는 배우들이 있다. 내가 알던 가수 김현식도 어쩌면 그런 배우와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음악과 현실의 삶 사이에서 부딪히는 모순이나 갈등을 술로 달래던 것이 결국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게 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가난한 시인, 가난한 예술가'라는 이름도 결국 세상사에 익숙지 못해 제 눈 제가 찌르는 일을 선택한 대가일 것이다. 예술가의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세상사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굳이 귀를 자르고 눈을 찌르지 않아도 '세상살이'가 어렵고, '세상이' 고통스럽다. 그러니 그 고통을 남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감내하는 것이 예술가일 수밖에.


그런데, 한쪽 귀가 없거나 '캡틴 큐'인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대학 강단에? 예술인 단체에? 인사동 화랑가에? 거기 그들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골고다 언덕이 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구글 지도에도 없다. 프랑스 가수 니꼴 류의 노래 '안녕? 예술가여'처럼 "우리를 위해 세상을 바꾸고, 우리의 아픈 기억을 잊게 하는 마술사"인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모양 빠지게 눈 찌르면 아플까봐 도망간 건 아니라 믿는다.


아마도 이 시대에는 제 눈이 아니라 남의 눈을 찔러야 예술이고 뭐고 가능함을 깨달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 눈을 제가 찌르는 고통을 견디는 예술의 시대는 가고, 남의 눈을 찔러 예술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고 그를 팔아 부자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예술은 고통의 산물이 아니라 기술의 산물이 되었다. 남의 눈을 찌르는 기술. 기술도 능란하면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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