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일로 차를 운전을 하고 가다 저만큼 보이는 교차로 신호등이 바뀔까 가속페달을 조금 더 힘주어 밟는다. 막 노란 등으로 바뀌고, 그냥 밟느냐 멈추느냐 번개처럼 판단을 내린다. 아차! 끼익! 한 발 늦어 브레이크를 밟는다. 정지선을 살짝 넘었다.
초조한 마음에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의 점멸에 맞춰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린다. 열, 아홉, 여덟... 그때 할아버지 한 분이 앞을 지나 길을 건너신다. 그런데 할아버지 걸음이 이상하다. 걸음이라기보다 미끄러진다고 해야 할까? 발을 땅에서 떼지 않고 마치 얼음 위를 걷듯 발바닥을 끌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신호는 이미 끝나가는데 할아버지는 반도 못 건너가신다. 나는 더 조급해지고, "아이고' 할아버지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길을 건너시겠어요" 답답함에 살짝 짜증이 나는데, 길 건너 한 아주머니께서 쫓아와 "할아버지 신호 바뀌었어요. 저하고 같이 가세요" 하며 할아버지의 팔을 부축해 서둘러 길을 건넌다.
할아버지의 어눌한 걸음은 파킨슨 씨 병 때문이란다. 그게 근육을 약하게 하고, 그래서 걸음도 쉽게 걸을 수 없게 된다고. 달리기도 아니고 그저 걷는 것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할까. 걸을 수만 있다면 세상 어디라도 걸어가 보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그 할아버지도 젊어서는 누구 못잖게 잰걸음으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셨을지도 모른다. 달리기 선수였을 수도 있겠고. 하지만 어느새 노인이 되고 불현듯 질병이 찾아와 이제는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 길을 건널 때마다 운전자들의 원망 어린 시선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지은 죄도 없는데. 서럽지 않을까.
노인은 느리다. 파킨슨 씨 병에 걸리지 않아도. 그리고 급할 것도 없다. 급한 건 노상 바빠 죽겠는 젊은 운전자다. 나는 노인이 되어 길을 건널 때 젊은 운전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다. "이눔아, 바쁜 건 니 사정이여!" 천천히 건널 것이다. 답답하더라도 진득하게 기다려라. 바삐 달린다고 인생이 더 길어지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걷는다고 짧아지는 것도 아니니. 아무리 신호가 바뀐들 내가 다 건너기 전까지 니들이 기다려야지 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