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론취 (富論取)

by 세인트

가끔 잘 알려진 외국어 단어를 재미삼아, 심심풀이 삼아, 한문투로 바꿔본다. 누구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별 싱거운 짓 다한다는 반응이니까. 그러니 번역이 그럴듯하면 혼자 흐뭇하다. 주로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거나, 버스를 기다리거나 할 때처럼 무료한 틈새에.


이런 버릇이 생긴 건 '구락부'때문이다. 어려서 동네 어느 건물 입구 한쪽 기둥에 커다란 나무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었는데, 거기 칼로 새겨 도드라지게 한 뒤 검은 '뺑끼'칠을 한 글자가'ㅇㅇ구락부'였다. 궁금했다. 대체 구락부가 무슨 뜻일까?


궁금증을 더하게 만든 것은, 거기 들락거리는 어른들 대부분은 남자였고 '가다마이' 차림에 머리는 '찍구'를 발라 붙여 반들거렸다. 즉, 멋쟁이 아저씨들이 오는 곳이었다. 가끔 멋쟁이 아저씨들만큼 멋쟁이 누나들도 왔는데, 그런 날은 안에서 쿵짝 거리는 음악이 나왔고 대낮에도 창문으로 알록달록 조명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 이 '쥐방울만 한 놈'에게 '구락부'가 궁금할밖에.


'클럽'이었다. 그것을 일본식 한문투로 번역한 '구락부'俱樂部. 모여서 같이 즐긴다니! 기가 막혔다. 어쩌면 이렇게도 발음까지 닮은 완벽한 번역일 수 있을까! 어린 생각에,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 만들었구나 했다. 어른들은 외국 국가 이름도 거의 그런 식으로 불렀다. 이태리 불란서 영국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렇게 부르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비울빈(필리핀), 오지리(오스트레일이아) 같은 말을 쓰는 사람도 많았다. 아마도 '왜정'시절을 보내셨던 분들이라 그런 것 같다. 그 중 백미는 아버지께 배운 '대아미리가합중국 백리새천덕(大亞美理駕合衆國 伯理璽天德)'이었다. 이 암호같은 단어는 '대 아메리카 합중국 프레지던트'였다. 조선시대에 미국과 통상계약을 맺으며 쓴 말이란다.


음과 뜻은 물론 번역어에 역사성마저 느껴진다면 그건 예술이다. '동백림', 동베를린이다. 이제는 독일이 통일되어 자주 듣는 지명은 아니지만, 어린 내 기억에 각인된 이유는 '동백림 사건'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작곡가 윤이상, 시인 천상병을 비롯한 다수의 베를린 유학생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국가폭력 사건인데, 역시 정권의 핍박으로 갖은 고초를 겪으신 아버지께서 그 일로 몇 날 며칠을 분노로 술을 드셨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린 나로서는 역사적 사연보다 '동백림'이라는 이름이 주는, 어딘가 묵직한 느낌이 '간첩사건'이라는 말 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게 어딘지도 몰랐지만 '동베를린'이라 했으면 그다지 사건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동백림'이라 하면 어딘가 '육혈포'를 든 '빨치산'들이 말을 타고 하얗게 눈 덮인 숲 속을 달리는 '노서아'의 어느 변방이 떠오른다.


브런치를 한 지 열흘쯤 됐다. 그간 쓰다말다 묵혀든 글들을 정리해 올릴 수 있게 해준 이 앱이 고맙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처럼 만사 시니컬한 사람이 다람뒤 도토리 모으듯 차곡차곡 글을 정리해 올릴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런치'에게도 그럴듯한 이름을 하나 만들어주기로 했다.


전에는 브런치라 하면 강남 '유한마담'들이 레인지로버로 애들 학교 데려다준 뒤 카페에 모여 '느이유욕 살 때부터 즐겼던', 아점쯤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글쓰기 앱의 대명사가 됐으니 그에 어울릴만한 이름을 주어야 마땅하겠다. 그리하여 나혼자 만들고 나혼자 감탄한 '부富론論취取'. 즉, '말과 글이 풍성히 오가며 서로의 생각을 얻는 곳'.


모르는 게 아니다. 참으로 쓸데 없는데 머리를 쓴다는 것을. 이러지 말아야지 자책하는데, 이미 아빠의 싱거움을 잘 아는 딸애가 살짝 소금을 쳐준다.

"아빠, 고스돕만 치매에 좋은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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