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4.9
(오래전 00 일보에 연재했던 칼럼 중 하나입니다.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찾게되어 기록을 위해 다시 올립니다. 요즘은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갈 수도, 이불홑청 널어 말리는 집도 없겠네요)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제 엄마는 학교가 코 앞에 있어 좋다고 하지만 아이는 아니다. 학교가 가까울수록 자주 가야 하고, 멀수록 가끔 가도 된다고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물리적인 거리와 빈도에 대한 개념에 혼돈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학교와 집의 거리, 그건 물리적인 거리가 아닐지 모른다.
어릴 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이 정해져 있던가. 일부러 먼 길 돌아 낯선 경치에서 가슴 두근거리던 기억을. 어쩌면 아이가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학교를 자주 가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집이 학교 앞이니 먼 길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 요령이 생길 것이다. 곧장 집으로 오라는 엄마의 엄포가 물렁해지고, 제 '똥패'들이 생기고,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집인 그 빤한 반복에 가슴이 터질 지경이면, 아이들과 어울려 장난치며 깔깔대며 조금씩 먼 길을 돌아올 것이다. 오는 길에 오만가지 구경을 다 할 것이며, 그 길에 만난 낯선 것들을 처음엔 엄마에게 물어보다가, 나중엔 묻지 않고 저만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먼 길로 돌아오다가, 남의 집 마당 빨랫줄에 널려있는 이불 홑청을 몸에 한 번 휙 감아본다면, 아이는 자라서 예술가가 될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뭔가 다른 게 될 것이다. 먼 길을 돌아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조금씩 제 미래를 쫓아가는 일일 것이다. 부모인 우리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아이와의 몇 가지 약속, 또는 엄포가 아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아이들은 먼 길을 돌아 집으로 온다. 나도 그랬다. 그날 이불홑청을 감아 본 것이 고단한 미래를 만든 운명이 되었더라도 누구도 그걸 막을 수없다. 자기 자신도. 그게 삶인 것 같다.
(그날, 아이가 남의집 마당 이불홑청을 휘익 감았었나봅니다. 예술가가 됐네요. 어쩔 수 없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