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한우대신 미국산 쇠고기로도 행복했다는 글을 읽었다. 늦게 퇴근하는 아내를 위해 한우는 비싸 못 사고 값싼 미국산으로 식탁을 차렸지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읽으며 그냥 한우 먹었으면 이런저런 말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이런 것이 행복이 아닌지, 같은 구구절절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우를 마음대로 먹는 사람은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먹을 것이다. 매일 먹는 한우가 너무 맛있어 행복하다고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불가에서 말하듯 진짜 행복은 매일 한우 먹는 사람처럼 행복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가 아닐까.
글쟁이들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궁색 맞다'. 글을 이용해 온갖 변명을 설파한다. '돈이 없어 얼음장 위에서 자도 사랑하는 이와 밤을 보낼 수 있다면 행복하다', '애인 하나 없어 외로워도 혼자만의 시간이야말로 소중하다'는 등. 또 그걸 읽은 '궁색한' 독자들도 '라이킷'을 누르거나 댓글을 단다. 그야말로 자기들끼리 정신승리하며 행복하다.
'행복의 본질을 찾지 못해도 매일 한우를 먹으면 좋겠다, 그 본질이 한우보다 맛있나?' 이런 글이 있다면 제일 먼저 '라이킷'을 누르리라. 누가 "매일 한우를 먹여줄 테니 글 쓰지 마라"하면, 얼씨구 그러마 할 것이다. 옆의 가족은 소갈비 굽는데 돼지갈비 시키는 가장의 서러움을 안다면 욕할 수 없을 것이다. "3번 테이블, 돼지갈비 4인분!" 서빙 아줌마 때문에 더 서럽다.
누가 뭐래도 글을 쓰는 것은 그저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깊은 사유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수많은 글쟁이들이 오늘도 글을 쓴다. 진실을 찾고, 자신을 찾고, 삶을 구원하기 위해. 그러나 그것이 따뜻한 방에 앉아 톡톡 자판이나 두드리는 변명이라면, 가만히 앉아 혼자만 도 터져 신선이 되고자 면벽수도하는 일이라면,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편의점 야간알바라도 해서 한우 사 먹겠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는 말을 믿는다. 글은 사유로 써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쓰인다는 믿음, 그 믿음 때문에 나는 함부로 쓰기 두렵고, 함부로 쓰지도 못한다. 한우처럼 구워 먹지도 못하는 관념의 글 따위 써서 무엇하나,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