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by 세인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sop. 박혜상/피아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https://youtu.be/b-F6D-FrlGs?si=oAzMPZvkiZsdreJX


이 영상은 박혜상의 목소리가 아니라 반주하는 피아노 소리부터 말해야 합니다. 아주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이 곡이 어디로 갈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는 노래를 받쳐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곡의 흐름을 만들고, 속도를 정하고, 어디서 숨을 쉬고 어디서 밀어야 할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시합니다. 그래서 이 연주에서는 노래가 피아노 위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피아노가 먼저 길을 열고 그 위로 노래가 걸어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박혜상은 그 길을 정확히 알고 서두름 없이 접어듭니다. 그래서 초반에 목소리를 최대한 아끼지요. 이 절제는 혼자의 선택이 아니라 이미 반주가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는 신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피아노는 앞부분에서 감정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 하나하나에 방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 곡이 단순히 고운 노래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은 이미 이 반주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박혜상의 목소리는 불꽃처럼 터집니다. 이 곡을 기다리게 만드는 순간이고, 성악의 쾌감이 가장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이때도 귀는 계속 피아노를 따라갑니다. 반주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넓게 숨을 쉬며 목소리가 마음껏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이 순간, 노래와 반주의 관계는 주종이 아니며 동시에 아름다워지는 두 개의 선율입니다.


그러나 막상 인상적인 것은 그 이후입니다. 폭발이 지나가고 목소리가 나직이 내려오기 시작할 때, 피아노가 먼저 정리를 시작합니다. 여운을 늘이지 않고, 감정을 붙잡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과장 없이 끝납니다. 모든 것이 이미 연주 안에서 다 말해졌기 때문이지요.


난을 친 수묵화를 보는 듯한 이 노래는 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으나 이 영상은 그 정적인 느낌을 낡은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박혜상의 짧은 머리는 장식도, 연출된 흐트러짐도 없습니다. 이 선택만으로 이 노래는 과거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현대적인 지금의 시간에 발을 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의상도 빼놓을 수 없네요. 한복의 선과 비례, 여백만 남기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되어있습니다. 음악과 더불어 이처럼 완벽한 미장센 으로 연출된 영상에 감탄하게 됩니다.


소프라노 박혜상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연결된 상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의 여러 영상 버전 중 단연 이 작품을 손꼽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수필/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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