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va

by 세인트

Chuva - Mariza (Concerto em Lisboa, 2006)

https://youtu.be/tC88Oyz8Khs?si=3IpTTAU7WkcvjWA7


이 노래를 들으려 음반을 올리면 환청처럼 음악보다 먼저 빗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빗소리가 아니라 비를 받아들이는 음악의 마음이라고 해야겠네요.


2006년 리스본 공연에서 마리자는 이 노래를 서둘러 시작하지 않습니다. 마치 천천히 온몸이 비에 젖은 뒤 노래 속으로 들어가려는 모습 같습니다. 노래보다 먼저 공기의 무게가 바뀌는 것을 가만히 기다립니다.

기타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파두의 전통적인 모습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일렁이는 물결처럼 흘러가지만 결코 앞서 나서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듯 음을 깔아두고, 기타는 그 위를 조심스럽게 건너갑니다. 사이사이 들려오는 포르투갈 기타 '기타라'는 이 노래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줍니다. 한 음만 울려도 리스본의 저녁과, 이 도시가 오래 품어온 감정들이 함께 따라옵니다.


<Chuva>는 이별의 노래지만 격정적으로 울부짖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이미 많은 것을 지나온 사람의 목소리로 말합니다. 마리자의 목소리는 슬픔을 강조하려 힘을 짜내지 않고, 대신 단어 하나하나에 시간을 붙여놓는다. 그래서 가사는 노래가 아니라 기억처럼 들린다.


“삶에는 흔한 것들이 많지만 그것들은 그리움을 남기지 않는다.(As coisas vulgares que há na vida)"


이 첫 소절이 시작될 때, 관객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노래가 사랑이 끝난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비는 이 노래의 배경이 아닙니다. 그저 비는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역할을 맡을 뿐이지요. 이별의 순간 말하지 못한 감정, 차마 꺼내지 못한 울음을 비가 대신 듣습니다.


“그날, 네가 떠난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Aquelas que tive contigo e acabei por perder)


마리자는 이 가사를 크게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가 잠시 숨을 들이쉴 때, 이 노래는 단숨에

한 사람의 기억을 넘어섭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렇게 말할 때, 그건 한 사람의 슬픔이 아니라

리스본이라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공간이 공유하는 감정이 됩니다. 어쩌면 그것이 파두가 말하는 슬픔 또는 한이라는 사우다지(Saudade) 일지도 모르겠네요. 마리자의 이 2006년 리스본 공연은 그런 이유로 음악이 한 도시의 정서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래의 후반부, 비가 다시 등장하며 얼굴을 적시고, 그 눈물은 리스본의 유리창에 흘러내립니다.

이 순간 섬세한 소리를 가진 기타라의 선율은 특별합니다. 이별을 울지 않고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오케스트라나 기타가 지나갈 자리를 열어줍니다. 그래서 이 공연에서 부르는 <Chuva>는 슬프지만 슬픔에 지치지 않습니다. 아프지만 무너지지 않지요. 이미 충분히 울고 난 뒤 이제 지난 일을 조용히 말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이 노래는 이별의 순간이 아니라, 그날 이후의 날들을 위한 노래입니다.”라고요.

마리자의 <Chuva>는 비가 그치지 않는 노래가 아니라 비가 지나간 뒤에도 기억이 어떻게 남는지를 차분히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이 밤에 어울립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무심히 창밖을 한 번 더 보게 되는 순간. 그 순간 마침 비가 내리고 있다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어쩌면 당신의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가사인 Trazendo a saudade 추억을 되살린다는 부분을 감정을 억눌러 맺는 부분은 이 노래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놓치지 마시기를.(수필/음악)


*'Chuva'는 포르투갈 어로 '비'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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