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협박의 가려움

by 세인트

세상에서 가장 가려운 협박의 말이 무엇인가. 상대는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던진 말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협박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가워 긁고 싶기만 한. 그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들이 잘 쓰는 협박인 "좌시하지 않겠다"가 있다. 그러나 이건 기자들 앞에 '서서' 성명을 발표할 때 주로 쓰는 말이므로, 자리에 앉는 순간 무효하다. 상대와 마주 앉았으니 싫어도 '좌시'할 수밖에. 뭐 하나 해결 되는 게 없는 건 그 '좌시' 탓이다.


자기 복제에 능한 TV 일일드라마 작가가 많이 쓰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는 재벌집 사모님의 협박도 마찬가지다. 그건 가난한 여주인공이 사모님의 눈에 흙을 뿌려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드라마 후반부에 가면 사모님이 그토록 미워하던 여주인공을 갑자기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여주인공 '은 슬퍼할 필요도 없고, 그저 당하면서 드라마 종영만 기다리면 된다. 길어야 육 개월이니 그 정도 참아서 재벌집 며느리 되는 거면 할만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보다 더 가렵고 의미 없는 협박이 있다. 모든 부모가 알고 있는 협박이다. 아마도 조선시대에도, 통일신라시대에도 이 협박은 같았으리라. 어쩌면 이건 "엄마", "맘마" 소리처럼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고 나오는 언어가 아닐까 싶다. 그처럼 유서 깊은 협박의 말. "나 밥 안 먹어!"


아이가 처음 이런 협박을 하면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다. 내 귀한 아이가 저토록 화가 났으니 어쩌면 좋을까, 영양실조라도 걸리면 어쩌나, 굶어 죽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아이를 달래고 얼르고 뭐 맛있는 거 사줄까? 해줄까? 갖은 노력을 다해 본다.


하지만 한두 번 만으로도 그 협박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금세 알게 된다. 자신도 어릴 때 써먹은 협박일 텐데 어찌 꼭 이 과정을 겪어보고야 깨닫는지 신기하다. 부모도 확실한 대책이 있다. "그래, 먹지 마!"


이제 어느 집이나, 어느 아이나 마찬가지의 패턴이 작동한다. 먼저 아이는 울면서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러면 남은 가족들은 큰 소리로 하하 호호 웃으며 더 맛있게 먹는다. 잠시 뒤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와 식탁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신다. 앞에 빤히 물병이 있는데도 "물병 어딨어? 한다. 패턴대로 잘 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도 가족들은 못 들은 척 계속 먹는다. 그러면 아이는 반드시 이렇게 소리치게 되어있다. "다 먹네, 다 먹어. 그래 다 먹어라! 다 먹어라!" 더 서럽게 울며 다시 제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간다. 결말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증거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나와서 먹으라 하면 아이는 못 이기는 척 눈물이 고인채 웃다가 콧물을 펄렁인다. 드디어 식탁에 앉아 한 입 넣는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다. "맛은 있네!"


남 얘기하듯 했으나 사실 우리 아들놈 어릴 적 흑역사다. 휴대폰 동영상 기능이 없던 시절이 아쉽다. 장가갈 때 예식장에 틀어놓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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