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낯짝 시커먼 뱃속

by 세인트


2010. 6. 29. [더클래식500] 북카페 Book & Tree에서 - 후흑열전(厚黑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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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종오 번역: 김수연 출판사: 아침 1999.08.01


(글 달라고 하면 뭐나 된 줄 알고 여기저기 잡글을 많이 쓰던 때, '클래식 500'이라는 시니어레지던스

웹진에 올린 10여 년 전의 글입니다. 브런치 하며 예전에 쓴 글들 찾아 갈무리합니다)


길게 선 줄 앞으로 누군가 끼어들면, 처음엔 그 보다 도덕적인 자신이 우쭐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면 이내 종잇장 같은 도덕심이 흔들린다. ‘이거, 이러다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니야?’


법대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세상은 종종 그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자식에게 못되게 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반드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 같지도 않다. 울고 들어오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때리지 왜 맞고 다니니?”


2천 년 전쯤 왼쪽 뺨 맞으면 오른쪽 뺨까지 내미는 이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그가 유일했기에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다닌다. 예수라는 분이시다. 당연히 성인답게 착하게 살라 하셨고, 사랑으로 살라 하셨다. 하긴 모든 성인들이 같은 말을 하셨다. 그러면 구원받으리라고.


구원은 나중이고 지금 당장 ‘잘’ 살고 싶은 사람이 보면 딱 무릎을 칠 책이 하나 있다. 중국의 근대 철학자 이종오의 ‘후흑열전’. 후흑(厚黑)이라는 말은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뱃속’이라는 뜻이다. 후(厚)는 수치를 모르는 뻔뻔함이며, 흑(黑)은 무슨 일이든 꺼리지 않는 사악함이다. 그렇다고 뻔뻔하고 사악하게 살자는 그야말로 뻔뻔한 내용이 담겨있을 것으로 짐작하면 오해다.


이 책은 중국 역사의 위인들을 후흑의 개념으로 풍자한 것으로, 본래의 목적은 유교에 대한 비판이다. 유교의 인의(仁義)를 후흑(厚黑)과 비교해 유교를 패러디한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한 말이나 비판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척하며 끝까지 시치미를 떼라', '권모술수를 능숙하게 부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거나 상대를 조종하라' 같은 ‘공무원의 여섯 가지 지침사항’에서는 우리동네 구청에 갔다왔는지,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의 깊이와 상관없이 풍자는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견고한 유교의 형식과 위선을 공격하면서도 전투적이지 않다. 누구나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술술 읽어나가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유교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채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앞세운다면, 이종오는 인간 본성의 자기 중심성에 주목한다. 즉, 인간본성인 후흑을 유교가 내세우는 당위성으로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흑을 이기는 것은 도덕적 설교가 아니라 더 강한 후흑이라는 주장이다. 낯 두껍고 속 검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의 술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후흑의 대가인 중국의 제후들이 백성들에게 유교만을 장려했다는 주장도 재미있다.


이른바 ‘공자 죽이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다분히 탈 권위주의 시대의 분위기에 편승한 혐의가 있지만

이종오의 '후흑열전'은 인간본성에 근거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측은지심이 드는 것은 아이가 불쌍해서(맹자)가 아니라 죽음이 두려운 나 때문(이종오)’이라는 말에는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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