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Other Love

by 세인트


No Other Love - Jo Stafford

https://youtu.be/Plx1ry1M_ao?si=BVcf78yEByiTZ0Mx

쇼팽 연습곡 Op.10-3 일명'이별의 곡'의 선율에서 가져온 멜로디이지요. 그런데도 <No Other Love>는

차용된 음악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이 가사와 이 목소리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선율 같습니다. 그만큼 이 멜로디에 얹힌 조 스태포드의 아련함이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조 스태포드는 요즘 가수들처럼 반짝이지도 않고 둥글고, 표면은 조금 닳아있는 느낌입니다. 하이파이 대신

오래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질감. 바늘이 레코드 홈을 지나가며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그 소리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질감 때문에 이 노래는 사랑 노래이자 기억의 기록처럼 들립니다.


가사는 단순합니다. 내게 “다른 사랑은 없다”라고 말하지만 다짐은 아니지요. 누군가를 다시 붙잡겠다는 선언도 아닙니다. 이미 끝난 사랑을 뒤늦게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는 젊은 사랑의 열기보다

되돌릴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의 차분한 체념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그간 몇 편의 영화에 쓰여 잘 알려졌지만 특히 케이트 블란쳇의 퀴어영화 'Carol'에서 이 곡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질 만큼 적절하게 사용됐지요. 하지만 저는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영화 'The Master'에서, 전쟁 후 방향을 잃고 떠돌던 프레디가 과거의 연인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흐르던 이 음악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흔히 기대하는 재회의 장면과 달리 격한 감정도 없고 서로를 부둥켜안는 몸짓도 없습니다. 프레디는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듣게 되는 말은 너무 담담합니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그 사실은 사과도 변명도 없이 전달됩니다.


그 순간 프레디의 얼굴에는 분노도, 절망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표정만 남습니다. 이미 늦어버렸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은 이렇게 조용해진다는 것을 그 장면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노래가 흐르지요. <No Other Love>가 떠올리는 사랑도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사랑은

방황하는 프레디를 구원해주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건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혼자서 확인해야 하는 시간뿐입니다.


조 스태포드의 노래는 그 시간을 억지로 끌어오지 않고 일부러 슬픔을 요구하지도 않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는 두드러진 클라이맥스가 없습니다. 대신 노래가 끝난 뒤 남는 짧은 침묵이 있지요. 영화 The Master가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공백으로 감정을 남기듯, 이 노래 역시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많은 것을 말합니다.


영화는 왜 하필 잘 알려진 쇼팽의 선율을 담은 노래를 사용했을까요? 이미 지난 시대를 살았던 멜로디가 다시 한번 다른 시간의 사랑을 입고 돌아온 셈이지요. 멜로디는 오래되었지만 감정은 여전히 현재형이니까요.

그래서 <No Other Love>는 옛사랑을 미화하지 않고 행복했던 순간만 꺼내오지도 않습니다. 대신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람 안에 남아 있는 추억의 무게를 그대로 둡니다.


프레디가 그녀의 집을 나와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장면처럼, 이 노래도 조용히 끝납니다.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이 노래를 듣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사라졌지만 그 사랑이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떤 노래들은 그 사실을 가장 정확한 온도로 기억해 준다는 것. <No Other Love>는 바로 그런 노래인 것 같습니다. 새것처럼 반짝이지 않지만, 누렇게 빛바랜 흑백 사진 같은,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수필/음악)

https://youtu.be/9pi2B5Lj4H8?si=aGWnFGzFnFLzZVOr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0화Take On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