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이듯, 뭔지도 잘 모르며 누가 "좋다더라!" 하는 소리만 듣고 냉큼 들어온 브런치. 글 세 개 올려놓고 혹시나 해서 신청했더니 작가로 불러주고. 얼씨구 신이 나서 묵혀두었던 글들까지 올려놓으니 라이킷, 댓글이니 달리고. 할 일 없는 자에게 즐거운 놀이터가 됐다.
보아하니 품앗이하듯 라이킷 하는 게 이 바닥의 국룰 같기도 해서 나도 열심히 라이킷을 누르는데, 감동에 젖어 먹먹해지는 글도 있고, 낄낄 거리며 웃게 만드는 글도 있고, 가끔은 뭐지? 뭔 얘기를 하려는 거지? 내용이 아닌 문장이 판타지인 글도 있고. 아무튼 부론취라고 이름 한 내 작명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오늘도 라이킷도 하고 구독도 하고 '문장이 판타지인' 글도 읽는데 눈에 들어오는 제목 '언어의 정원'.
내 글에 댓글을 달아준 사람을 거슬러 올라가니 그가 올린 글의 제목이다.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영화의 제목. 역시 이 영화에 대해 올린 글이었다. 브런치를 부론취라 부르는 내 생각처럼, 많은 작가들의 넘치는 글들과 그 글로 공감하며 나누는 곳이라는 의미대로, 그분의 글로 인해 <언어의 정원>을 기억했다.
몇 년 전 "대전은요?"같은 천진한 어린이의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춘 한 여성이 대통령이었던 시절, 모 정부 부처의 예산으로 '청소년 언어 순화'를 위한 5대 도시 청소년 대토론회를 기획한 적이 있다. 지역의 청소년 수백 명을 원탁에 앉혀놓고 그들의 거칠고 오염된 언어를 순화하자는 취지였는데, 정부 중앙부처의 일인 데다가 전국 규모의 사업이라 입찰한 관련 사업체 중 비교적 신생이었던 우리로서는 수익은 물론 일거에 회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기획을 담당한 나는 '청소년 언어 순화'라는 행사의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에서 이미 청소년은 나쁜 말을 하는 순화 '대상자'가 되었다. 수백 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데 나 같아도 오지 않겠다.
제목부터 바꿔야 했다. 청소년이 대상자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했고, 70년대 표어식 제목으로는 시작도 못 할 것 같았다. 청소년들이 맘에 쏙 들어할 제목이 없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언어의 정원'이었다.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제목이어야 했다. 각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열 명씩 둘러앉은 수십 개의 원탁을 부감으로 촬영하면 마치 정원에 수많은 꽃이 피어있는 모습과 같다. 오염된 언어로 인해 삭막한 황무지에 아름다운 언어가 꽃피는 정원이 만들어진다면... 이것이 제목을 떠올린 시작이자 기획의 핵심이었다. 게다가 청소년은 우리 사회가 예쁘게 가꿔야 할 꽃이 아닌가 하는, 너무나 빤한 클리세지만 또 아니라 할 수 없는 명분.
먼저 '언어의 정원'을 제목으로 한 기획서를 팩스로 보내고 다음날 주최 측인 부처의 회의실에 들어갔다. 기다리는 공무원들의 온도가 느껴졌다. 상석에 앉은 국장은 '만면에 미소를 짓다'는 표현 그대로. 낙점이 됐구나!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회의 중 누군가 이 회사는 아직 경력이 적은 편.... 어쩌고 하자 국장이 "그럼 경력 보다 창의성에 점수를 높여!" 하고는 내게 "제목이 참 맘에 들던데 어떻게 생각한 거요?" 한다. 이때다 싶어 기획서의 내용에 더해 영화 얘기까지 덧붙였다. 국장은 쐐기를 박듯, "우리 기성세대들 고쳐야 해, 이 기획서처럼 청소년을 주체로 봐야지, 계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부터 고쳐야 해!" 한다. 완전히 우리 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부처의 사업을 맡게 되었고 일약 전국 5개 대도시를 아우르는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러니 '언어의 정원은' 내겐 특별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스즈메의 문단속'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 등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지만 그중 '언어의 정원'은 감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체를 가진 애니메이션으로, 극 중의 남녀 두 인물은 언어 대신 정원에 내리는 비, 또는 빛으로 교감하고 치유한다.
이 영화를 보았던 때,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압박을 받던 시기였다. 영화 하나로 위로가 될 만큼 만만한 현실 상황이 아니었으니 당시에는 그저 아름다운 영화구나 하고 잊었다. 하지만 훗날 그 영화가 나의 사업에 변곡점을 만들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을 어찌 예견할 수 있었을까.
비록 제목 하나 차용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나, 기획서를 만들고 토론회를 운영하는 내내 영화의 장면 장면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도식적일 수밖에 없는 기획서 사이사이 행간에, 단어 속에, 숨어 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오늘 내 글에 댓글을 달아준 분의 글 <언어의 정원>이 지난 기억을 일으키고, 그 지난 기억 속의 <언어의 정원>은 내 사업과 삶에 도약을 일으키고... 오늘 내가 읽은 글 한 줄, 내가 들은 음악 한곡, 내가 본 영화 한 편이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나는 너무나 신기하다. 그러지 않더라도 이미 이 아름답고, 멋지고,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