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가 싫어

by 세인트

글 쓰기가 싫다는 것을 글로 쓰다니. 이건 글에 미친 증상이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건 어딘가 퇴폐적인 매력이라도 있지, 글 쓰기가 싫다는 것을 글로 쓰다니... 중환자다.


한 때 달리기 중독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이 중독은 우울증처럼 비가 오면 더 도지는데, 일단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변비 걸린 강아지처럼 불안하여 방 안을 왔다 갔다 한다. 운동화를 신었다 벗었다 하고, 급기야 견디지 못해 남의 복도식 아파트에 숨어 들어가 1층부터 15층까지 오르내리며 복도를 달린다.


등산을 가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동네 뒷산을 올라도 히말라야 원정대나 입을 등산복을 갖추는데, 이 병에 걸리면 오직 빤쓰 한 장만 입고 정상까지 뛰어올라간다. 대체 타박타박 걸어가지를 못한다. 그러면서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즐기는 것이니 이건 가죽 스키니녀의 채찍을 좋아하는 피가학 음란증과 비슷한 질환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걸 두고 좋은 중독이라 하지만, 세상에 좋은 중독이 어디 있나. 엉엉 울고 있는 상주에게, 날씨 좋은 날 골라 잘 죽었다고 호상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글 쓰기도 한 번 걸리면 치료가 쉽잖은 난치병에 속한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건보 적용해 주는 '희귀 난치병'에 속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질환에 걸린 자들 대부분은 초딩 때 백일장에서 장려상이라도 한 번 받았거나, 지역의 문학동인지 같은데 시 한 편 올리기만 해도 쉽게 걸리는 병이어서 희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학소년 소녀니, 문협 회원이니 하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이들이 앓는 질환이라, 거의 '글쓰기 증후군'이나 팬데믹 수준으로 보아야 할 사회적 정신보건 문제일 수는 있다.


간혹 이 증상은 먹고사는데 정신없어 잠시 치료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주변 사람들이 '이제 정신 차렸구나!"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말을 한 사람도, 자신도 속기 쉽다. 하지만 첫사랑 그녀를 잊을 수 있을까, 마치 오래전 폐결핵을 앓았던 사람의 엑스레이처럼, 수십 년이 지나도 가슴 한편에 하얗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도 책 한 권 낼 거야."


이미 어느 정도 감염됐거나 잠복기에 있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내복 솔기의 서캐처럼 모인 곳, 멀쩡한 사람도 쉽게 감염되고, 나을만하면 상호 재감염을 일으키는 브런치라는 곳을 조심해야 한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증상의 바이탈그래프가 급격히 치솟으며, 처자식도 돌보지 않고 한 달 만에 백여 개의 글을 쏟아내는 나 같은 중증이 되기도 한다. 그것도 고작 신변잡기, '그래서 어쩌라고?'싶은 자신만의 'just an old fashioned love song'을 끄적거리게 되는데, 이건 브런치에 창궐하는 '자뻑'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형적인 예후다. 그 못잖은 질환으로 우쭈쭈 증후군이라는 것도 만연해, 읽는 이는 하나도 외롭지 않고 아픈데도 없는데, 몰라서 그래, 넌 아파, 넌 외로운 사람이야 하며 우쭈쭈 해줄게 하는 증상이다.


대체로 말기에 이른 심각한 사람들을 두고 '피를 토하듯 글을 쓴다'든가 '영혼을 갈아 넣어 작품을 완성한다'든가 하는 표현을 하는데, 그걸 그저 문학적 수사로 받아들이면 위험하다. 실제로 코피 터지는 수가 있다.

하여 오늘 문득 나는 계몽이 되어 글 쓰기가 싫어졌다. 글이 밥 먹여주느냐, 네 나이에 작가가 될 거냐, "되면 뭐?" 하는 비난 때문이 아니다. 이게 여간 독한 바이러스가 아니라서 이러다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을 것 같은 걱정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싫어졌는데, 그걸 싫어졌다고 이처럼 글로 쓰고 있으니 돌이킬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어떤 이는 글쓰기 불치병에 걸리면 시한부 여주인공처럼 비련의 아름다움 같은 게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건 걸작을 쓰느라 햇빛도 못 보고 창백한 얼굴을 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나 같은 어중 떼기는 쓸 게 없으면 안 쓰고 광합성이나 하러 나가는 게 건강한 태도인데, 안 쓰고 싶다는 걸 쭈그리고 앉아 글로 쓰고 있으니 이게 바로 병에 걸렸다는 증거다. 그러게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하루 하나의 이야기'는 공연히 왜 약속을 해가지고 이 고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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