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정차식
https://youtu.be/lqXTViChBbM?si=BCx7RfhpNZ6dhliX
누가 노래할 것인지 궁금해지죠? 이준호의 화려한 플라멩코 기타가 먼저 등장하기 때문일 겁니다. 플라멩코의 성격을 닮은 화려한 박동이 분명히 느껴지는데, 그 박동이 ‘열기’로만 지속되지 않고 빠르게 튕겨지는 음들이 한 문장처럼 이어지면서 방향을 만들어냅니다. 요란하지만 흐트러짐이 없지요. 그래서 이어 등장할 보컬리스트에 대해 더욱 기대를 갖고 궁금해하게 만듭니다.
이 솔로가 인상적인 이유는 “멋있다”에서 끝나지 않고 먼저 이 노래가 전개될 조건을 만들어냅니다. 지금부터 이 곡은 이런 온도에서, 이런 습도를 머금고 이야기될 거라는 예고편입니다. 달콤함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곧바로 쓴맛이 올라오는 종류의 음악이 아니라, 달콤함 자체에 이미 어딘가 낡은 빛이 섞여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이 솔로는 장식이 아니라 무대의 조명을 조절하는 손 같은 느낌인데요,. 밝기를 올리는 게 아니라 빛의 방향을 바꾼다고 할까요?
기타가 한참을 이야기한 뒤에야 정차식이 들어옵니다. 맨발로요. 이 타이밍이 좋습니다. 살랑살랑 익숙하고 가벼운 셔플이지요. 현란한 기타 솔로 뒤에 마치 정색하듯, 장난치듯, 농담처럼 걸어 들어옵니다.
그래서 첫 소절은 “자, 시작합니다”라는 목소리가 아니라. “여기 있었네요”라는 목소리입니다. 관객은 그 순간 묘하게 안심합니다. 기타가 이미 바닥을 다져놓았고, 보컬은 그 바닥을 믿고 말을 시작하지요.
그다음에야 가사가 들립니다. 가사는 신파적입니다. 그걸 숨기지도 않습니다. 제목부터 ‘달콤한 인생’이라니, 이 말이 얼마나 사람을 간지럽게 하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 후회, 체념 같은 것들을 정면으로 꺼내놓는 방식은 자칫 촌스러워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는 그 신파 같은 가사에도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기타가 이미 너무 고급스럽고 예민한 언어로 판을 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신파가 ‘과장’으로 들리기 전에 ‘사실’로 남아버린 셈인 거지요. 그런 점에서 이 무대의 기획은 정말 절묘합니다.
정차식의 보컬은 그 사실을 또 한 번 정리합니다. 소리를 크게 만들지 않는고 발음을 꾸미지 않습니다. 그저 흥얼거리듯 별일 아니라는 듯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한걸음 물러나 노래합니다. 그래서 가사 끝에 남는 온도가 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사는 ‘울음’이 아니라 ‘기억’으로 들립니다. 사실은 슬픈 내용인데도 감정이 급하게 밀려오지 않고, 뒤늦게 무겁게 남습니다.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비극이 아니라, 오래 생각나서 더 곤란한 종류의 이야기처럼.
이 무대의 묘미는 여기서 생깁니다. 신파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두고, '그냥 슬픈 노래'라고 정리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은 그런 정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기타와 보컬이 놓이는 순서가 감정의 형태를 바꿔버리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감정이 곡을 지배하지 않고 감정은 나중에, 더 조용히 남게 되지요.
이런 구성은 결국 정차식이라는 사람을 드러냅니다. 그는 감정을 포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파의 요소를 일부러 눈에 띄게 올려놓고, 그 위에 고급스럽고 예민한 기타 언어를 얹어 감정의 표정을 바꾸는 거지요. 흔한 재료를 흔하지 않게 만드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 느껴지는 건 또 다른 종류의 능력입니다. 흔한 재료를 흔한 채로 두되, 배치만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 그래서 이 무대는 단순히 “잘했다”가 아니라, 정차식이라는 뮤지션은 '자신의 음악세계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잘 보여주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도 처음엔 기타를 듣느라 마음이 열리고, 그 열린 틈으로 보컬이 들어오는데, 보컬이 들어오자마자 눈물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라 듣고 나서 한 박자 뒤에 생각이 생기는 구조지요. “아, 이 노래는 달콤함을 말하지만, 그 달콤함이 이미 오래되었다는 걸 알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제목을 생각하면 ‘달콤한 인생’은 찬사가 아니라 농담처럼 들립니다. 웃기자고 하는
농담이 아니라, 삶이 가진 아이러니를 아는 사람이 하는 농담. 이 아이러니가 과장되지 않는 이유는, 기타가 화려하게 시작했고, 보컬이 담담하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게 시작해 담담하게 마무리되는 흐름이 이 제목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정차식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은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이 뮤지션은 유행의 중심에서 반짝이는 타입이 아니라 무대에서 무엇을 먼저 보여주고, 무엇을 나중에 말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도 오래 남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고음을 끝 간데 없이 올리는 이른바 '불러제끼'는 노래나, 관객보다 노래하는 사람이 먼저 자기 감정에 젖어 죽어버릴 것 같은 '공기반, 소리반'이 대세인 가수들 속에서 노래는 '기술’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태도’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공연은 하나의 선언처럼 보입니다. “나는 이렇게 음악을 한다”고요.
혹시 이 뮤지션의 태도가 마음에 드셨다면 그의 노래 '빛나네'도 함께 권해드립니다.
https://youtu.be/9iiSQL0N14M?si=KXfHQR2Qyd952v_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