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없으면 - 손지연
https://youtu.be/QVMlZ2llviY?si=pmmDVsYSS9D4btAR
가수는 직업명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만 그렇게 불러주어야 하는 이름입니다. 노래할 때만 ‘가수’가 되는 존재인거지요. 손지연은 노래할 때,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노래하는 순간마다 자기 안의 여러 인물을 동시에 불러냅니다. 손지연이라는 놀라운 싱어송라이터의 탄생을 알린 '실화'에서는 '사랑에 만취된 주정뱅이'라고 표현한 연애의 패배자, 그리고 방황자, 시를 읽는 독자, 모순으로 가득한 나르시시스트, 사회에 위협받는 몸, 지루함을 견디는 관찰자…. 이런 인물들이 한 곡 안에서 서로를 밀치고 당기며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손지연의 노래는 ‘완성된 감정’이 아니라 ‘움직이는 감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막 공개 된 신곡 <그대 없으면>도 그런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곡은 오직 정원영의 피아노 하나로만 반주됩니다. 악기가 적을수록 노래는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목소리의 흔들림도, 문장의 과장도, 호흡의 불안도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니 이 곡은 노래솜씨보다는 부르는 이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손지연의 노래들은 멋을 부리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싱어송라이터들의 노래가 대체로 그렇지만, 손지연은 특히 모든 노래가 다 그녀 자신의 일을 노래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건 기교에 힘을 쏟지 않고 명확한 가사 전달에 더 마음을 쓰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른바 사랑을 "사랑"이라 발음하지 않고 "쏴랑"이라 묘하게 발음을 하는 가수들 사이에 선명한 가사전달도 미덕이라 하겠습니다.
가사는 첫 줄에서 곧장 '이미 해본 말'을 내밉니다. “그대 없으면 힘들어진다고 누누이 말했지.”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힘들어진다’보다 ‘누누이’입니다. 누누이, 이미 여러 번 했던 말, 이미 여러 번 되풀이된 마음, 이 문장은 시처럼 빛나려는 문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처럼 낡아버린 문장입니다. 그런데 손지연의 음악에서는 그 낡음이 약점이 아니라 증거가 됩니다. 문장이 낡았다는 건 마음이 닳았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실제로 시간을 견뎠다는 기록이지요.
그리고 곡은 ‘판타지’를 만듭니다. 여기서 판타지는 현실을 흐리게 만드는 장식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을 정면으로 대면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현실이 너무 날것이라 감당하기 어려우니, 마음은 그 현실을 다시 배열해서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그 재배열을 가사로 나타냅니다.
한 번의 고백으로 끝낼 수 없는 마음은 계속 다른 문장을 요구합니다. 손지연은 같은 감정을 반복해 말하지 않고 같은 감정이라도 방향을 조금씩 바꿔서 다음 문장을 꺼냅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기 연민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천일야화 속의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 곡은 체념하면서도 미련이 있고, 포기하면서도 다시 확인하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순이 한 줄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볼 수는 없더라도 어딘가 있다는 것만으로…”라고 노래합니다.
이별은 끝났는데, 존재는 끝나지 않는다는 믿음. 혹은 믿고 싶다는 욕망. 이 모순을 해결하려 들면 노래는 가르침이 되거나 혹은 결론을 강요하는 문장으로 굳어버릴 텐데 손지연은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냥 들고 가지요. 바로 이런 점이 그게 그녀의 노래가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문학은 모순을 지우지 않고 모순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노래에서 ‘부재’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계속 움직이는 마음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정원영의 피아노는 그 모순을 버티게 하는 바닥이 되어줍니다. 피아노는 울음이 터지려는 순간에도 과장된 드라마로 끌고 가지 않고 문장이 길어질 때 숨을 남겨주고, 호흡이 흔들릴 때 시간을 정리해 줍니다.
그러니 앞에서 '가수는 노래할 때만 가수'라는 표현을 떠올리면, 손지연은 노래할 때 가수이고, 동시에 노래할 때 여러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여러 존재가 한 곡 안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노래는 한 가지 색으로만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이 보통의 가수에게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편함'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진실함'이 되지요. 손지연을 아끼는 사람들이 말하는 천재성은 아마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쁜 결론을 주지 않는 대신 마음이 실제로 겪는 복잡한 상황을 끝까지 가져가는 능력 같은 것이겠지요.
그러니 오늘 손지연이 새롭게 내놓은 <그대 없으면>은 이별을 끝내는 노래가 아니라, 이별 이후의 모순을 끝내지 않는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필/음악)
혹시 손지연이 낯선 분들께는 이 노래 하나 더 권해드립니다. <실화>입니다
https://youtu.be/9KB5lzwXiA8?si=rmny7C9fgLwrVq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