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민 자와디(Ramin Djawadi)

by 세인트


Ramin Djawadi


라민 자와디의 음악적 어법은 영화의 거대 서사 속에서 어떻게 시스템의 부품처럼 작동하는지, 음악으로 세계의 크기를 어떻게 확장하는지,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악기 편성이 주는 질감이 영상의 깊이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기 위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부터 열어본다.


오프닝 시퀀스는 라민 자와디가 설계한 음악적 공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카메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입체 지도를 따라 윈터펠에서 킹스랜딩으로, 다시 바다 건너 에소스 대륙으로 쉼 없이 이동한다. 이때 흐르는 메인 테마는 첼로의 묵직한 선율을 중심으로 일정한 박자와 음형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화면 속 지형이 바뀌고 새로운 가문의 문장이 등장해도 음악의 큰 줄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관객이 이 시퀀스에서 먼저 인지하게 되는 것은 개별적인 장소가 아니라, 이 파편화된 영토들이 하나의 거대한 체계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와디는 음악을 통해 흩어진 대륙의 조각들을 하나의 구조물로 보여주며, 이 대서사가 어떻게 나아가게 될지 리듬으로 방향을 제시한다.


이러한 구조적 반복은 서사의 밀도가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시즌 6의 결정적 장면인 베일러 대성당 시퀀스의 ‘Light of the Seven’을 보자. 이전까지 호전적인 현악 합주를 주로 사용하던 자와디는 이 장면에 이르러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우는 파격을 선택한다. 피아노는 아주 낮은 음역대에서 시작해 일정한 간격으로 음을 놓으며 극의 긴장을 조여 온다. 서세이 라니스터를 비롯한 인물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분주히 이동하고 긴박한 대사가 쉴 새 없이 오가지만, 소리는 그 속도에 따르지 않는다. 장면은 길게 늘어지고 음악은 그 여백을 채우며 폭발 직전의 압력을 쌓아간다. 대형 참사가 벌어지는 순간에도 음악은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 대신 앞서 설정한 차가운 흐름을 유지한다. 이런 설정은 관객이 사건의 충격보다 그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두려움을 소리를 지속해 예감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자와디의 음악적 문법은 드라마 <웨스트월드(Westworld)>에서 한층 정교해진다. 메인 테마에서 보여주는 단순한 선율의 반복은 인간과 호스트(기계)의 차이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가상의 테마파크가 정해진 루프(Loop)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청각적으로 각인시킨다. 특히 살롱의 플레이어 피아노에서 연주되는 롤링 스톤즈의 ‘Paint It Black’이나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 같은 대중음악의 변주는 극의 설정을 관객의 피부에 직접 이식한다. 기계적인 강세와 오차 없는 템포로 연주되는 이 곡들은 배경음악의 역할을 넘어, 인물들의 기억이 강제로 리셋되어도 세계의 물리적 법칙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시스템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인간의 감정과 무관하게 연주가 계속되는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벽이 되어 관객을 절망하게 만든다.


이러한 고정된 규칙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변주되어 나타난다. 같은 선율이 편성만 바꾼 채 재배치되어도 관객은 변화보다 동일함을 먼저 감지하게 된다. 음의 외형은 달라져도 밑바닥에 깔린 패턴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에피소드가 바뀌고 인물이 교체되어도 이 세계의 근본적인 규칙은 바뀌지 않는다는 공포가 소리를 통해 쌓이는 것이다. 자와디는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설명하는 대신, 이 같은 반복을 활용해 관객의 기억을 고정시킨다. 플레이어 피아노의 건반이 스스로 눌리는 장면은 자와디의 음악이 이 극에서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장편 영화 <아이언맨(Iron Man)>에서도 자와디는 장면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토니 스타크가 지하 작업실에서 슈트를 조립하거나 탁 트인 상공에서 비행 테스트를 하는 장면에서 음악은 장면의 속도를 따라 멈춤 없이 흐른다. 컷이 빠르게 교체되고 기계 장치들이 복잡하게 맞물리는 영상 속에서도 소리는 일정한 탄력을 유지한다. 자와디는 주인공의 내밀한 고뇌를 설명하기보다 행동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이것은 영화가 편집으로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아이언맨> 같은 작품은 화면 전환이 빠르다. 토니 스타크가 작업실에서 망치질을 하다가, 다음 장면에서는 갑자기 하늘을 날고 있고, 또 다음 장면에서는 적과 싸운다. 이렇게 장소가 순식간에 바뀔 때, 음악이 장면마다 끊기거나 분위기가 바뀌면, 관객의 몰입이 깨지게 된다. 이를 위해 라민 자와디는 장면이 바뀌어도 일정한 리듬과 비트를 멈추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간다. 그 결과 관객은 눈으로는 여러 장소를 보고 있지만, 귀로는 하나의 연결된 흐름을 듣게 된다 소리가 장면과 장면 사이의 빈틈을 채워 각 씬이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회의가 이어지는 방, 이동이 잦은 통로, 전쟁을 앞둔 정적 같은 공간에서 음악은 변화를 서두르지 않는다. 현악기가 두터워지거나 편성이 바뀌어도 기본적인 패턴은 제자리를 지킨다. 소리가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며 장면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동안 관객은 눈앞의 상황을 즉각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그 세계가 흐르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게 된다. 결과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그 과정을 차곡차곡 누적시키는 힘, 그것이 자와디가 반복을 사용하는 근본적인 목적이다. 인물들의 대화가 길어지는 구간에서 소리는 서서히 음량을 줄이지만, 그 바닥에 깔린 일정한 박동은 멈추지 않는다. 이는 대사가 사라지는 순간 곧바로 다시 떠올라 장면의 공백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장면에서도 자와디의 문법은 일관된다. 공격의 순간을 타격감 있게 강조하기보다 병력이 이동하는 방향과 전선이 형성되는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간다. 전투의 승패라는 결과보다 전투가 벌어지는 거대한 환경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음악은 한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컷이 바뀌고 실내에서 실외로 시점이 급격히 전환되어도 소리의 흐름은 끊기지 않는다. 자와디는 전환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장면 사이의 간격을 메움으로써 관객이 이 방대한 스케일의 서사를 하나의 거대한 흐름의 덩어리로 인식하게 만든다. 특히 수천 명의 병사가 진군하는 광활한 시퀀스에서 소리는 특정 무기에 집중하지 않고, 군대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발굴림 소리와 음악의 박자를 일치시켜 세계의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결국 라민 자와디의 작업은 개별 곡의 수려한 멜로디를 남기는 기존의 영화음악가와 다른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소리를 통해 서사가 배열되는 규칙을 만들어내고, 관객이 그 세계의 지속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에피소드가 바뀌고 시즌이 거듭되어도 동일한 위치에 놓이는 음악적 패턴들은 관객에게 강력한 익숙함을 제공하며, 그 익숙함은 거대한 판타지나 SF 세계관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기초가 된다. 요한 요한슨이 시간을 늘려 장면의 무게를 만들고, 벤 프로스트가 소음으로 물리적 타격을 가한다면, 라민 자와디는 반복되는 음형을 그려 단단한 세계관을 구축한다.


이러한 정렬은 음악의 편성이나 화려함의 정도와 무관하다. 현악이 풍성해지거나 브라스가 추가되어 웅장함이 더해지는 순간에도 자와디가 설정한 기본 패턴은 뼈대처럼 남는다. 음 사이의 간격, 반복이 일어나는 위치, 전환이 발생하는 지점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에 관객은 장면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서사가 확장될수록 소리는 같은 자리에 반복적으로 돌아오고, 이 익숙함이 세계를 안정시킨다. 관객은 세계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는 감각을 소리의 지속을 통해 확신하게 된다.


장면들이 배열되는 규칙을 감지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자와디가 영화음악에 남긴 선명한 공헌이다.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어도 그가 구축한 반복의 규칙은 관객의 무의식 속에 남아, 그 세계가 여전히 정해진 방식에 따라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남긴다. 이것이 개별 장면의 인상적인 선율을 남기는 것보다 대형 서사가 도달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자와디의 음악은 이야기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그 구조를 드러내며, 자신의 넓은 음악적 세계 안에 깊숙이 머물게 한다.(수필/음악)


*플레이어 피아노 : 공압식 자동연주 피아노 (현대에는 midi로 대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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