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5FQ5diryCjE?si=-_ejVJbUAmQS7lkB
영화 Time of the Gypsies (집시의 시간)에 쓰인 < Ederlezi>입니다. '에데를레지'는 집시들의 봄축제 이름입니다. 축제의 노래지만 흥겨움보다 애절한 느낌이 더 강합니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집시 마을에서 태어난 페란은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능력은 삶을 구원하지도, 단순하게 설명해 주지도 않습니다. 범죄와 이주, 사랑과 배신을 거치며 그는 점점 다른 세계로 밀려납니다. 감독인 쿠스투리차는 이 과정을 음악을 통해 들려주는데요, 그것이 바로 이 Ederlezi입니다.
Ederlezi는 원래 집시들이 봄을 맞이하며 부르던 노래로,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축하하는 의식의 음악이지만 이 노래에는 슬픔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에는 밝게 시작하지만 끝으로 가며 묘하게 슬픔을 머금고 있습니다.
모든 집시 어머니들,
모든 집시 아버지들,
양을 잡네,
나는 가난하여, 멀리 떨어져 앉아있네
집시들의 날, 우리들의 날
노랫말은 이처럼 축제의 기쁨과 가난과 소외의 슬픔을 함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집시의 전통민요이지만 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ć)의 영화 <집시의 시간> 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전통악기의 선율과 아름다운 장면까지 더해 애잔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두 개의 심장'과 같은 슬라브 민요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또렷해집니다. 슬라브권 음악이 감정을 한 자리에 오래 남기는 편이라면, 발칸반도 집시들의 음악은 감정을 리듬 위에 풀어놓습니다. 박자는 불균형하고, 템포는 갑자기 흔들리며, 슬픔과 환희가 동시에 튀어나옵니다. 발칸 집시들에게 음악은 넘치고 그 넘치는 음악이 집시들의 삶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 발칸적 정서에서 집시, 즉 로마(Roma)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들의 기원은 인도 북서부에서 출발해 유럽 전역으로 이동했고, 그 긴 이동의 흔적이 음악에 남아 있습니다. 장식적인 선율, 즉흥적인 흐름, 감정을 숨기지 않는 방식. 이런 것들이 인도의 멜리스마적 전통과 중동의 음악적 선법, 거기에 유럽의 화성이 겹치면서 지금의 발칸 사운드가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Ederlezi는 특정 국가의 민요라기보다, 오랜 유랑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를 영화의 상징으로 만든 Goran Bregović는 발칸 록과 집시 브라스, 종교적 합창을 결합해 발칸 음악을 세계에 번역해 온 작곡가입니다. 여기서 고란 브레고비치는 Ederlezi를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감정을 증폭시켜서 화면과 충돌시킵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흐를 때마다 이야기의 분위기를 바꿔놓습니다
영화 속에서 Ederlezi는 여러번 반복되지만, 특정 인물의 테마로 고정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때는 결혼식에서, 이별의 순간에서, 떠나는 장면에서도 같은 노래가 울립니다. 음악이 이야기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집시들의 시간을 드러냅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으면서도 노래는 같은 자리에 머물기 때문이지요.
이 곡을 꺼낸 이유는, 동유럽 음악이라는 하나의 이름이라고 해도, 슬라브와 발칸은 전혀 다른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이 노래 한 곡만으로도 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축제와 애도가 분리되지 않고, 삶과 죽음이 같은 박자 위에 놓인 이 음악은 탄압과 방랑이 이어진 집시들의 삶과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기쁨도 슬픔이고 슬픔도 기쁨인 셈입니다. 그러니 이 노래는 발칸의 봄, 집시들의 축제, 그리고 언제든 다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모두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단지 이 한곡의 노래 속에요.(수필/음악)
*Gypsy는 영어적 표현이고, 라땡계 언어권에서는 남성은 Gitan(e)로 불립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가 로마의 후예라 여기며 Roman으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영화 'Roma'도 집시를 그린 영화입니다